새 아파트는 과연 필요한가?

2026년 4월 26일

by HWP

오늘 낮에 새 아파트가 닭장처럼 많이 지어진 동네를 지나게 되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집에, 정말 사람들이 다 살고 있는 걸까.” 반듯하게 늘어선 상자갑 같은 건물들, 비슷한 높이와 비슷한 색, 마치 복제된 듯한 창문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동네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집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집값은 계속 오르고, 원하는 곳에 살기는 어렵고, 내 집 마련은 점점 요원한 꿈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끝없이 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그 풍경을 마주하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뒤집힌다. 정말 집이 부족한 걸까, 앞으로도 계속 집을 새로 지어야 하는 건가?


이미 우리 사회는 집의 ‘숫자’만 놓고 보면 부족하지 않은 상태에 들어섰다. 통계적으로는 가구 수보다 주택 수가 더 많은, 이른바 ‘주택 보급률 100% 이상’의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집이 없다고 느낀다. 이 간극은 단순한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집은 비어 있다. 투자 목적으로 남겨진 채 사람의 온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 분양은 끝났지만 아직 입주되지 않은 집, 재건축을 기다리며 잠시 멈춰 있는 집들. 또 어떤 집은 너무 멀리 있다.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관계를 맺는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선택되지 않는 집들. 결국 ‘집이 있다’는 사실과 ‘살 수 있다’는 감각 사이에는 꽤 큰 거리가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계속 집을 짓는다. 특히 좁은 면적에 더 많은 사람을 담아낼 수 있는 형태로. 높은 밀도의 아파트는 가장 효율적인 해답처럼 보인다. 한정된 땅 위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동시에 자산으로서의 안정성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파트를 원하고, 시장은 그 수요에 응답한다.


하지만 그 풍경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이미 충분히 많은데도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그 안에서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이상한 모순과 오류. 숫자상으로는 넘치는데, 체감으로는 계속 부족한 상태.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필요한 곳에 없고 원치 않는 곳에 많은 기이한 현상이 보인다.


하지만 집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유동적이다. 처음 독립을 꿈꾸던 시절에는 그저 나만의 문 하나, 나만의 창 하나면 충분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집은 점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함께 사는 사람이 생기고,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고,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새로 들어온다. 그렇게 가구의 모습이 변할 때마다 집에 대한 필요 역시 미묘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바뀐다.


소득 또한 집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어떤 이에게 집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버텨내야 하는 공간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취향과 여유를 담아내는 장소가 된다. 같은 ‘집’이라는 단어 안에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이유다. 그래서 어떤 집은 충분하고, 어떤 집은 늘 부족하다. 결국 집은 단순한 수량으로 환산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단계와 조건 위에서 끊임없이 다시 정의되는 존재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낯선 풍경은,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필요들이 한 방향으로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비슷한 형태의 공간을 향해 움직일 때, 그 안에서 누군가는 과잉을, 또 누군가는 결핍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얼마나 더 지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은 결국 사람을 닮는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살아간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