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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Jul 01. 2024

짧고 굵은 나의 집중력

우울할 땐 스페인어 공부

     

나에 대한 모든 질문과 인식은 굉장히 상대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착각이다. 사춘기에 ‘나는 누구인가?’‘남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매우 궁금해 하는데 그때 충분한 자기 관찰, 자기 성찰이 있어야 착각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를 포함한 심리검사는 모두 ‘자기가 본 자기’이므로 내 마음이 어떤지를 들여다 볼 뿐 그 검사가 ‘남들도 나를 이렇게 본다’는 기준은 아니다. 실제로 남들은 외향적이라고 보는데 본인은 늘 긴장하고 사는 소심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MBTI에서 I를 받는 사람도 있고 자신은 공감능력이 뛰어나며 감성적인 F라고 생각하지만 내면은 그러할지라도 표현에 서툴면 다른 사람들은 “네가 F라고?” 하면서 의아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Quién soy?(나는 누구일까?)

나도 이런 나에 대한 인식에 대해 돌이켜 볼 일들이 많았다. 가령 나는 내가 느긋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는데 남편과 딸로부터 ‘성질 급한 사람’이란 말을 듣고 내면의 충돌을 느낀 일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아빠 닮아 게을러 터졌다’고 자주 말해서 난 내가 게으르고 느긋하다고 스스로를 생각하며 살았다. 나의 어머니인들 나를 바르게 보았을까. 어린 시절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리도 없고. 그렇긴 해도 하여간 그때 받은 충격은 꽤 커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생각할 때마다 ‘정말?’이라고 한 번씩 브레이크를 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자기 객관화. 성숙한 어른은 이걸 잘하는 사람이다. 심리검사 결과를 남들이 보았을 때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말하는 나와 다른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나 사이에 괴리가 적을수록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없이.   

  

자기객관화가 성숙의 척도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공부와 시험을 즐기는 학생이었지만 성적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최상위권 친구들은 수학만 여섯 시간 넘게 공부했다고 투덜거릴 때 나는 한 과목을 두 시간 이상 공부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험 기간 한참 전부터 여러 과목을 돌려가며 조금씩 공부했다. 스스로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딸이 대입시를 준비하던 7, 8년 전,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고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으며 고2 4월까지도 공부란 걸 거의 하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자기도 친구들과 대학을 가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 이후 대학에 가서 장학금 받겠다고 시험 기간에 공부할 때, 최근에 취업 준비하느라 공부할 때, 화장실도 가지 않고 다섯 시간 연속, 어떤 날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 빼고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아, 집중력은 저런 것이구나, 깨달았다.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집중력이란 게 있긴 한가, 딸을 통해 돌아보기도 했다.   

  

스페인어 공부는 아직 기초 단계니 잘 모르겠지만 영어 공부를 하면서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뭔가 영어란 걸 들여다보는데도, 즉 내 노력이 100이면 효과는 20도 안 되는 것 같은 이유. 그것도 한참 후 깨달은 것인데 하루 온종일 영어 공부에만, 듣기만 3, 4시간, 읽기만 5, 6시간 이렇게 여섯 달, 이런 식으로 초집중 모드로 공부한 사람들이 효과가 있었던 거다. 내 공부는 ‘이것저것 돌려막기’식이었다.


내멋대로 돌려막기 식 공부

스페인어 공부도 그렇다. 

    

유튜브 강의 들으며 공책 정리하기

인강에서 정리한 것으로 작문하기

작문 채점하기

동사변화표 외우면서 작성하기

문제집 풀기

문제집 채점 후 새 공책에 필기하기  

   

이렇게 써놓으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중간에 온갖 인터넷 검색에 번역앱 활용까지, 너무나 잡다한 방식으로 돌려막기 공부를 하고 있다.


돌려막기란? 공부하다 지루해지면 다른 방식의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인강 듣다가 문제집 풀다가, 작문하다가, 이런 식으로. 이 방법도 효과는 있다. 일종의 나선형 공부방법이니까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에는 매우 좋다. 강의만 쭉 듣고 있으면 다 이해한 것 같지만 다른 문제집을 풀어보면 내가 과거형 동사변화를 잘 못 외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니까.   

  

문제는, 나의 한 가지 공부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인강을 한두 시간 들으면 지겨워서 더 못 듣는다. 스페인어 공부만 두 시간 이상 하지도 못한다. 물론 평상시에는 직장을 다니니까 두 시간 공부 시간이 나오지도 않지만 휴일에 시간이 있어도 이거 하다 저거 하다, 이런 방식인 거다. 


짧아도 집중력

이러니 발전이 없지, 이러면서 책을 펼치다가 순식간에 스페인어 공부에 빠져든다. 다락원에서 나온 <누에보 에스파뇰 마르차> 라는 문제집을 2권부터 사는 바람에 처음에 너무 어려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도 듣기, 읽기, 문법이 고루 배치된 문제집은 꽤나 재미있다. 금세 싫증을 느끼는 탓에 한 시간 정도 공부하면 더는 못하는 게 문제일 뿐. 하지만!!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완전 몰입’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뭔가 새로운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순식간에 그 일에 몰입을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은 완전 몰입.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때도 요리를 할 때도 외국어 공부도 독서도 그랬다. 그 시간이 길지 않았을 뿐. 

  

집중력이란 뭘까? 깊이를 말할까, 지속력을 말할까. 나는 오래 앉아 공부하는 건 잘 못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찾아 공부 방식을 기획하고 단번에 초집중하는 건 잘한다. 그러면 집중력이 나쁜 건 아니지? 게다가 난 즐기잖아. 그럼 오늘부터 나는 집중력 좋은 사람인 걸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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