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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외길, 더없을 끝 길!

이정표도, 안내길도 없다. 이어진 길이 어딘지도 모른다.

by O Ri 작가



숨을 쉬고 있는 게 다행인가 싶을 때가 있나 보다. 살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결국은 살고 싶어지는 게 삶이라고 했다. 무너지지 말고, 잘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최악은 아니게 살아졌음 싶은 게 인생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한 낮에 시청 앞 길거리에서 주저 앉아 울고 나서는 다 버린 건지, 어떻게든 버티는 건지 모르게 이삿 짐을 뺐다.


부모님 하고는 연락을 끊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부딪혔을 때 "아빠."라고 부르는 내 목소리에 세상 불편한 듯한 그 표정을 맞닿뜨렸다. 세상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내가 들러 붙을까봐 걱정 되는, 피해가야 하는 흉한 벌레라도 되는 듯 어쩔줄 몰라 하시며 발길을 반으로 빙 둘러서 돌아 가셨다.


나는 요즘 동네를 빙 둘러서 걸어 다닌다. 부모님과 부딪히기 싫고, 내가 살아 있다는 거 자체가 불편하고 부담이신 듯한 그분들과 더는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는 얼굴 부딪히기 않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남동생이 전해 준 부모의 말들이 마음의 연을 끊게한 결정적인 결심이 됐다.




일단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베이커리에서 마감 알바한 지 한달이 다 돼 간다. 며칠 전부터는 오전에 아들 등교 시켜 놓고, 곧바로 뛰듯이 달려가는 김밥집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노동의 강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의 이상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몸이 너무 고됐다. 메뉴 레시피도 외워야는데 한 번에 쏙쏙 사진처럼 박히지가 않았다. 토요일이라 너무나도 쉼없이 바쁜 오늘, 결국 나는 짤렸다.

이십 대 베트남 대학생 사수가 정말 일을 손 빠르고 능숙하게 너무 잘한다. 일도 잘 가르쳐 준다. 그런데 내가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다.


재료 준비에, 레시피 대로 재빠르게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 놓고 조리를 해서 내야는데 실수 연발이었다. 설거지 하다 결국 손이 베었는데 손이 밴 지도 모르고 양배추를 썰려 하다 피를 묻혔다.

옆의 손가락에 손톱 아래는 찍혀 있었다. 찍혀서 안에 살갗이 분홍색으로 살짝 드러나 있었다. 몰랐다.


토요일, 1초도 쉴틈 없고 간단하게라도 점심밥 먹을 시갸도 없이 쉬지 않고 밀려드는 주문에 몸살날 것처럼 버거웠다. 두 다리가 바닥에 주저 앉을뻔 했다. 이악물고 참으며 해내려 했지만 약해진 체력이 버텨내질 못했다.

첫 출근한 평일 3일은 그나마 버틸만 했다. 어제는 진짜 손님이 너무 없어서 되려 할 일 없이 서 있는게 뻘쭘하고 눈치 보일 정도였다.


결국 오늘, 미숙함은 제일 바쁠 때 티가 팍 난다더니 톡을 받았다.


김밥집 프랜차이드 본사의 대표라는 엄마 사장님의 막내 아드님이신 젊은 사장님께톡이었다.


나는 죄송하실 거 없다고, 준비하시는 배우일 잘 되시길 바란다고 하며 마무리 했다.

젊은 사징님도 글의 힘을 믿는다며 작가일 응원하듯 톡을 주셨지만, 솔직히 작가 일에 미련과 꿈은 남아 있어도 기대와 희망은 없다. 기대와 희망을 가지기에는 계속 상처만 쌓을 거 같고 현실의 살아지는 게 더 중요한 지금 불확실하게 매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저녁에 마감조로 하는 베이커리 일과 동일한 아르바이트로 다시 알아 봐야할 듯 하다. 또 하나의 세상 경험을 쌓았다. 귀한 경험이었다고만 생각하고 싶다.


김밥집 주방일 함부로 달려 들지 마세요. 만만한 노동이 아닙니다. ^^;;







나는 일단 살아 있다. 어찌 어찌 버텨 가고 있고, 살아는 있다. 그 옆에서 어린 아들은 단 하루도 상대방에게는 가 있기 싫고 통화 하기도 싫다며, 내 팔짱을 꼭 끼고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그 아들에게 지금 제일 자신있게 해 줄 수 있는 건, 꼭 안아 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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