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숙증 앞에 이글거리는 욕심을 내려놓다.
지랄 맞게도 온 동네에 치맛바람을 휘날려대던 시절이 있었다. 초2엄마였던 당시의 나는 어디 한 군데 안 쑤시고 다니는 데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시도 때도 없는 교류가 목숨보다 중했다. 공간적 배경이 대치동이 아닌 게 이상할 만큼 자식 공부 욕심으로 이글거렸던 나였다. 물론, 그런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게다. 아닌 척하는 것엔 선수였으니까. 밖에서는 욕심 없는 엄마, 겸손한 엄마, 수수한 엄마 코스프레를 했지만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면 아이를 사정없이 볶아댔다
청소년 상담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그 학업 스트레스가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자녀에 대한 나의 욕심은 크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돼”
기본만 하자라는 욕심이 하나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 욕심은 음흉하게 나의 오장육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 때가 있었던가 싶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공책과 학습지가 거실로 날아다녔다. 손목 스냅을 현란하게 움직여 내가 원하는 곳에 공책과 학습지를 날리는 경지에 이를 정도였다. 그나마 교과서를 학교에 놓고 다녀서 다행이었던 시기다. 이글거리는 욕심으로 자녀의 마음이 닫히는 줄도 모르고 아이를 사정없이 볶아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너보다 더 잘하잖아.”
“넌 유치원 때 실컷 놀았으니,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공부 안 할래?”
“넌 잘하고 싶은 욕심도 없니?”
아이 학업에 대한 욕심 앞에 상담사는 무슨… 지랄 맞은 엄마였다. 미어캣처럼 모든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 때, 3학년이 되기 전 “성조숙증” 검사를 받아 보자는 학부모의 말에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병원 가는 길은 백조처럼 우아했다. 우리 아이는 키가 원래 좀 큰 편이었고, 날씬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우아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나오는 나의 모습은 구렁텅이에 빠져 진흙을 온몸에 덮고 있는 백조였다. 자녀의 손에 주사 바늘이 꽂히고 시간대 별로 피를 뽑을 때, 내 속에 이글거리는 음흉한 욕심이 함께 뽑히고 있었다.
“성장이 2년 빠릅니다. 엄마보다 키가 작아서 아마… 156 정도밖에 안 클 겁니다. 생리를 초등학교 3학년에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의사의 진단과 함께 난 근심이라는 터널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버렸다. 함께 갔던 다른 엄마는 자기 자식이 성조숙증이 아니라, 키가 작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나보다 더 큰 근심을 하고 있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함께 온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을 제정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한동안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었다. 원인보다 앞으로의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지인, 네이버 언니, 오빠 등 무조건 찾아 원인과 방법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내린 결정은 한 달에 한번 맞는 주사보단 자연 성장을 하기로 했다. 성조숙증 원인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도 하나의 원인이라는 말에 나의 오장육부에 이글거렸던 음흉한 욕심을 다 날려 버렸다.
제일 큰 변화는 학업 라이딩이 아닌 운동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문화 센터에서 지속하고 있었던 발레는 기본으로 유지하면서, 학교 방과 후 활동으로 음악 줄넘기 추가. 인터넷 선착순 접수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지역 수영장을 한 번에 등록해 버리는 나의 금손 덕분에 주 2회 수영 추가. 이렇게 본격적인 운동 라이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가 운동을 잘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좋아했다. 그래도 일주일의 스케줄이 쉽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퇴근하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깜깜한 저녁 아이 책가방과 발레 가방 그리고 수영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차에서 내리면서 남편은 우리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남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여졌나 보다.
남편의 말 한마디가, 지친 우리를 웃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