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개학이 우리에게 안겨다 주는 해방감을 만끽해야만 하는 시기가 3월이다. 지긋지긋한 겨울방학을 어떻게든 버티어 낸 3월이 주는 해방감은 꿀맛처럼 달았다. 커피 향을 풍기며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중 울린 전화.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아이 학교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수업 중이신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햇님이 외할머니가 위급하셔서 급히 지방을 내려가야 해서요. 햇님이 바로 보내주세요."
너무 다급해서 말을 더듬으면서 통화를 했던 거 같다. 최소의 짐을 챙겨 햇님과 버스를 타고 기차역을 향했다. 아이에게 할머니의 상황이 안 좋아서 지금 내려가야 한다고 겨우 이야기를 해 준 거 같다. 내가 놀란 것보다 아이가 더 놀랐을 텐데 그때는 미쳐 아이의 마음까지 챙기지 못했다. 기차 시간까지 조금 시간이 있어서 택시 대신 대중교통을 선택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기차역으로 걷고 있는 중간에 햇님이
"엄마, 나 핸드폰이 없어."
라고 말한다.
순간의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난 분노를 분명 참았지만, 햇님은 이미 나의 분노를 받고 있었다. 길바닥에서 가방을 다 뒤졌다. 직감적으로 버스에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어플로 핸드폰 추적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탔던 그 노선 그대로 핸드폰은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가 버스를 어찌 따라가겠는가. 핸드폰은 버스와 함께 여행을 떠났고, 우린 우리의 여정을 가야만 했다.
친정 여동생이 예매해 준 기차 시간에 맞춰서 가는 것이 우리의 첫 임무이다. 그 첫 임무가 결국 무산되었다. 핸드폰을 찾으며 우물쭈물하던 그 시간은 우리의 첫 임무를 무산시키기에 충분했었다. 행신역의 기차를 놓친 우린 서울역을 향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께 우리가 못 탄 기차를 꼭! 잡아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말로 기사님을 당황시켰다. 정적이 흐른 뒤 난 차분히 말했다.
"서울역에 최대한 빨리 도착하게 해 주세요. 행신역에서 놓쳐서요. 다음 기차라도 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조급하고 흥분된 마음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핸드폰에 있는 방대한 사진으로 인해 나의 핸드폰은 최소의 어플만 존재했었다. 택시도 어플로 못 잡고 손을 흔들어야 했고, 기차도 동생의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조급함을 더 느꼈던 거 같다. 스마트한 세상과 동떨어져있는 중년의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입석표를 예매해 준 동생 덕분에(5살 딸아이 혼자 데리고 기차 탄 여동생이 더 힘들었을 텐데 이 언니까지 챙겨주느라 힘들었을 텐데. 미안해진다.) 간신히 다음 시간대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러나 입석은 타인에게 전달하기가 안 되는 상황. 몰랐다. 가는 내내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표 확인 하시는 승무원에게 설명은 했다. 혹시 표를 확인해야 하면 도착해서 보여드리겠노라고.
이제야 햇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조해하는 엄마인 나를 묵묵히 잘 따라오고는 있었지만 나보다 더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햇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입원 중이잖아. 근데 의사가 급히 자식들 내려와야 한다고 했데. 그래서 급히 내려가고 있는 거야. 핸드폰은 버스 여행 잘하고 있어. 지금은 수색 갔네. 아빠한테 더 알아봐 달라고 했으니깐 분실물 신청 알아보고 계실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엄마가 아까는 당황했어. 일단 기차 탔으니깐 됐어."
햇님은 안심이 되었는지 긴장이 풀렸는지. 기차에 있는 3시간 가까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바로 차를 끌고 우리가 내릴 포항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표가 없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기차 내리는 곳까지 친히 나와 있어 준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