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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Apr 16. 2024

은막의 스타 마릴린 먼로의 콜라병 몸매와 간헐적 다이어

“그녀는 페니실린 이후 최고의 치료제였다(The Greatest Cure since Penicillin).” 화려한 금발의 여인, 마릴린 먼로에 대한 찬사의 일부다. 20세기 최고의 은막의 스타로 기억되는 그녀는 2차 대전 후 미국을 대표하는 섹스 심벌 중 한 명이었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늘씬한 허리와 긴 다리는 뭇사람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또 빨려들 듯한 그윽한 푸른 눈에, 매력적인 금발은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특히 고귀하지 않은 이미지는 더욱 대중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관능미와 백치미는 연기로 인해 더 강화됐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이나 바람에 날리는 미니스커트에 당황하는 모습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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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육체파 아름다움과 백치미의 두 가지 이미지가 형성된 요인이다. 할리우드 스타를 넘어 지구촌의 많은 남성을 설레게 한 그녀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 ‘페니실린 이후의 최고의 치료제’다.

페니실린은 세균에 의한 감염을 치료하는 최초의 항생제다. 인류의 평균 수명은 1950년대 50세 전후에서 요즘에는 80세 언저리로 늘어났다. 페니실린은 인류의 수명 연장의 결정적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릴린 먼로의 인기는 미국 군인들에게 페니실린과 같은 반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공산권과 대치중이던 그들은 성애영화의 주연인 마릴린 먼로에게 열광했다. 그녀는 1954년 오키나와와 한국을 방문했다. 주일 미군과 주한 미군 위문 행사였다.

그녀는 오키나와에서 군인병원을 찾아가 위문했다. 부상병들은 그녀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이에 그들은 마릴린 먼로를 몸을 치료하는 페니실린에 비유해 마음을 다스리는 여인으로 말한 것이다. 주한 미군들도 열광적으로 환호했고, 그녀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녀가 공연을 마치고, 남편 조 디마지오가 기다리는 일본으로 갔을 때는 폐렴에 걸린 상태였다.

​뭇 남성의 팬이 된 그녀는 세 번 결혼했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옆집 남자 짐 도허티와 만났다가 20세에 헤어졌다. 두 번째 남편은 메이저리그 전설적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다. 그러나 행복은 9개월 만에 파경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세 번째 남자는 극작가 아서 밀러. 그녀는 지적으로 잘생긴 남자에게 끌렸고, 남자는 완벽에 가까운 여자의 관능미에 푹 빠졌다. 그러나 사랑은 6년을 넘기지 못한 새드 엔딩이 되었다.

마음을 붙잡지 못한 마릴린 먼로는 마약 등의 약물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여러 남자와 짧고 강렬한 연애를 반복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그의  형제,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 배우 말론 브랜도, 이브 몽탕 등도 염문의 대상으로 오르내렸다. 또 식당 종업원, 택시기사, 잡지기자 등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의 만남 이야기도 이어졌다.

​36세에 숨진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 그녀가 스타가 된 것은 문화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2차 대전은 인구를 감소시켰다. 사회는 여성적인 여성, 생산능력이 있는 여성에 목말라했다. 본능적으로 육감적인 여성 그리고 다산을 원했다. 자연스럽게 가슴과 엉덩이를 두드러지게 하고,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는 패션이 나타났다. 여성들의 인권도 전에 비해 성숙해졌다. 1953년에 잡지 플레이보이가 창간될 정도로 사회는 급격하게 성 개방이 되었다.

이 같은 문화는 육체파 여배우가 섹시 스타로 우상화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그녀 또한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는 콜라병 몸매를 유지하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관리였다. 그녀는 음식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수준도 꽤 높았다. 그러나 몸매 관리 효과를 지속하기 위해 먹는 것을 제한했다. 아침은 계란 2개에다 따뜻한 우유를 마셨다.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육류를 섭취했다. 쇠고기 스테이크 또는 양고기에다 당근 5개를 먹었다. 디저트는 달콤한 핫 퍼지 선데를 찾았다.
일종의 간헐적 다이어트다.

그녀는 식단에  만족했다. 그 무렵의 의사들은 많은 일을 하는 여성은 아침을 잘 먹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별다른 공감을 하지 않았다. 계란과 우유 정도면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저녁때는 스테이크로 영양 보충을 했다.

식사 후 달콤한 아이스크림 섭취는 금세 포만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릴린 먼로는 적절한 영양 보충을 하면서 좋아하는 음식도 먹었다. 비만 치료에서도 너무 안 먹으려고만 하면 실패한다. 좋아하는 것도 먹으면서 즐기면서 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그녀는 심리적 공허함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유년 시절의 사랑 결핍, 의붓아버지와의 불편함, 계속되는 배고픔, 스타가 된 후에도 사람들의 이중적 시선 등은 그녀의 정서 불안 요인이 됐다. 그녀의 인간관계는 짧고 강렬했고, 불안정했다. 우울증 경향도 보인 그녀는 몇 차례 극단적 선택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약물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녀는 와인 애호가였다. 그녀는 ‘하루를 샴페인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시작한다’는 인터뷰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그녀의 삶에서 와인은 큰 의미가 있었다. 전속 사진작가인 조르쥬 바리의 증언은 그녀의 와인 사랑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마릴린 먼로는 샴페인 350병으로 욕조를 채워 목욕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알코올과 약물 의존이 있었으나 몸매 관리는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이후 사회는 마른 몸매에 지나치게 관심이 높아졌다. 여성은 물론 남성 연예인도 깡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름다움의 관점은 다양하다. 깡마른 몸매, 마른 몸매. 식스팩, 통통한 몸매, S라인, H라인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마른 몸매로 획일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 측면에서는 깡마른 몸매보다는 콜라병 몸매, 모래시계 체형이 더 바람직하다.

마릴린 먼로와 같은  볼륨 있는 몸은 영양 관리와 함께 근육 관리가 핵심이다. 힙과 가슴 등 부족한 부분의 근육을 키우고, 상체와 하체를 고루 발달시키는 웨이트 훈련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하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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