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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훈 Apr 23. 2024

명 연설가 케네디 대통령의 비결과 식탁 대화 속의 식탐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십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가 35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연설이다. 케네디는 미국 대통령 중에서 드물게 진보나 보수 양측에서 모두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명언 제조기로 통할 정도로 스피치에 뛰어났다.

43세 때인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그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미국의 사상 첫 대선 TV토론은 그에게 행운으로 다가왔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그의 장점인 마스크(외모)와 스피치가 돋보였다. TV토론 전까지는 케네디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 닉슨에게 열세였다.

부유한 케네디는 하버드대를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입학했고, 가난한 닉슨은 하버드대에 합격했으나 다닐 수 없었다. 케네디가 정치적으로 큰 경험이 없던 데 비해 닉슨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통치한 현직 부통령이었다. 두 사람의 지지 판도는 토론에서 뒤집혔다. 시청자들은 도전자 입장인 케네디의 균형 잡힌 마스크에 먼저 눈길이 머물렀다. 또 그가 입을 뗄 때마다 계속되는 미소와 생기 넘친 표정, 미래지향적인 논리성에 아예 눈길이 고정됐다.

​반면 방어자 입장인 닉슨은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진지함은 무거운 표정으로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자주 닦는 모습도 최고 통치자 자격으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 결국 젊고 세련된 마스크 효과와 빼어난 스피치 덕분에 케네디는 미국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대통령 당선 후에도 뛰어난 웅변력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호소하는 정치를 유용하게 활용했다.

그의 스피치 기술은 가정교육, 식탁 대화의 결과였다. 케네디의 어머니 로즈는 자녀교육에 열정적이었다. 여성의 보람을 자녀의 양육에서 찾은 그녀는 식탁 토론 교육법을 실천했다. 4남 5녀를 키우면서 식사 시간에 아이들과 대화와 토론을 습관화했다. 로즈는 대화와 토론이 깊이가 있도록 세심한 준비도 잊지 않았다. 식탁 옆의 게시판에 뉴욕 타임스 등의 신문 기사와 주요 잡지 기사 등 관심 사항을 붙여 놓았다.

로즈는 아이들이 식탁에 앉으면 주요 기사를 읽어주고, 그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또 아버지의 사업 이야기, 아버지가 만난 사회의 리더들에 대한 이야기도 주요 메뉴였다. 자연스럽게 사회 흐름과 주류 사회에 대해 알게 한 것이다. 또 이에 대한 확장된 의견이 있으면 생각을 교환하곤 했다. 생각은 제한이 없었고, 말하는 방식도 자유로웠다.

다만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내 생각을 개진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민주적 토론 방식을 유도했다. 대화는 부모와 자녀들, 또는 자녀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는 티키타카 게임 방식이 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식탁 대화는 소화제처럼 가볍게 진행되고, 식사와 함께 유쾌하게 마무리됐다. 이러한 식사 중의 가벼운 대화는 천천히 식사를 하게 만들고 포만중추를 자극하여 과식을 막아 비만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종종 토론으로 진화됐다. 로즈는 토론 때는 어린 자녀에게 핸디캡(Handicap) 적용을 피했다. 어린아이는 다 큰 자녀에 비해 배려를 했으나 논리 전개에서는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려고 했다. 대화와 생각 개진에 비해 토론은 경쟁적인 상황이 되었다. 이는 훗날 케네디 형제들의 스피치 경쟁력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의학 측면에서 식탁에서의 가벼운 토크는 유용하다. 가족끼리 동질감을 확인하고, 기분 전환도 된다. 마음이 한층 안정된 상태라 소화효소 분비 촉진 효과가 있다. 이는 맛있는 식사와 건강한 삶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토론까지 이어진다면 상황은 다르다. 깊은 생각에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수반된다. 토론 등 무겁고 진지한 순간의 여운은 계속된 식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화가 제대로 되기는 쉽지 않다.

케네디 집안의 식탁 대화와 식탁 토론 문화는 스피치 경쟁력을 분명 강화시켰지만 스트레스가 되고 결국 정신 건강과 소화기 계통에는 적잖은 부담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일까, 케네디는 어렸을 때는 식탐이 심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 걸어 다니는 병동‘이 되었다.

어린 케네디는 식사 기도 시간에 음식을 슬쩍슬쩍 먹곤 했다. 자신의 접시는 물론 형의 것을 먹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식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식탁 대화에 대한 불유쾌한 반응이 억제하기 힘든 식욕으로 나타났을 수도 있다.

성인이 된 케네디는 희귀병인 애디슨증후군을 앓았고 치료를 위한 스테로이드의 과다한 사용은 척추에 골다공증을 유발하였다. 허리 통증도 심하여 허리 수술을 받기도 했다. 1960년 선거에서는 질환 논란에 대해 전면 거부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비서들은 약 가방을 늘 휴대해야 했다. 부신피질 호르몬 계통인 코티손과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수시로 투여받았다.

또한 만성 설사에 시달렸고, 이를 다스리기 위해 자사제를 대량 복용해야 했다, 때로는 아편이 함유된 지사제도 썼다. 그는 어릴 때도 복통이 잦았다. 17세에는 대장염으로 약을 다량 복용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우울증과 불면증 약도 처방받았다.

​케네디는 허리 통증으로 착용한 브레이스 때문에 죽음도 피하지 못했다. 그가 카퍼레이드를 할 때 한 발의 총알이 목에 상처를 냈다.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케네디는 브레이스 때문에 엎드리지 못했다. 계속 서 있던 그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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