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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누씨 Oct 26. 2023

모든걸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용기

내 나이 서른, 모든걸 내려놓고 떠났다

멕시코?? 거기 가면 총 맞는거 아냐..?


첫 목적지를 중남미 멕시코로 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니 열에 아홉은 내게 위험한 곳을 왜 가냐고 되물었다.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뉴스에선 오늘 관광객 2명이 멕시코에서 카르텔(중남미 마피아조직)에게 납치당했다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 심지엔 변함이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그곳에 꼭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4년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여행백팩 2개를 짊어진 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려놓음과 떠날 수 있는 용기

 

사실 난 '안정적'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사신 어머니, 한 직업으로 평생 일하신 아버지, 그리고 그런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나와 내 동생 모두 '큰 굴곡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난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해 날 불러주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내 바운더리(Boundry) 사람들과 교류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나, 내게 생각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 계기는 코로나였다. 코로나 기간 동안 내가 다니던 회사의 사업들은 전면 중단 되었고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염병은 꽤나 긴 시간 지속되며 나는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사람은 한가해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면 처음 몇 개월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불안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정말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맞는 건가?, 이렇게 안주하고 있다가 10년, 20년 뒤 내 모습을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잠식되어 매일매일이 지옥같이 느껴졌다.

또, 직장 내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수와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했는데 그게 첨예하게 부딪히며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발전했다. 근데 웃긴 건, 정의롭다고 치부했던 내 태도보다 오히려 그의 태도가 이 회사에 더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마디로 난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수많은 나사'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부모님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4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항상 큰 결정은 부모님과 상의하고 결정했던 나였기에 나로서도 큰 결정이었다. 그래도 잘못 살진 않았는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날 붙잡아줬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더 좋은 기회가 계속 널 기다릴 거라는 말과 함께 내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재차 되물어주었다. 하지만, 이미 결심이 바로선 나였기에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되돌릴 순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이라 표현할 수 있는 평생직장 회사를 내려놓았다.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쉬울 수 있는 퇴사겠지만 내게 있어선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가진 걸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용기, 마치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길을 내버려 두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담담하게 걸어가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퇴사기념 깜짝 꽃 선물까지 해준 고마운 내 담당사업 대학생들




너는 3개월도 못 버티고 돌아올 거야


"세계여행, 그거 아무나 하는 건 줄 알아? 너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기껏해야 3개월?"

실제로 내가 들은 말이었다. 나를 위해서라는 말속엔 숨겨진 가시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남을 탓할게 아니다. 얼마나 내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였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도 싶다. 나를 향한 말이 어떤 것이든 결국 나로 인해 비롯된 것들일 테니 담담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부정적인 말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진짜 내 능력을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난 불완전했다.


나는 어딜 가나 튀지 않고 잘 섞여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남들의 기준에 항상 맞춰주던 나는 성향이 나의 장점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무언가를 혼자 주체적으로 해야 할 상황에 놓이니 내 장점은 도리어 단점으로써 내게 작용했다. 그래서 어쩌면 도피성으로 여행을 택했던 거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20대가 끝나간 시점에 놓였음에도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앞둬 설레는 사람이 아니라 걱정만 켜켜이 쌓인 사람 같았다. 내 안엔 수많은 질문들이 물음표를 단 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행 가서는 뭘 할 건데? 그리고 갔다 와선 뭐 할 수 있고? 경력단절은 또 어떻고? 너 또래 친구들은 이미 경력 쌓아서 슬슬 결혼하는 시긴데?'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은 의심으로 변했고 의심은 곧 얼마 남지 않은 내 자존감에 상처를 주었다.

아직도 갈피를 못 잡은 내 인생을 위해 '초보운전' 딱지라도 붙여놓고 싶은 마음이다




누구나 처음은 두려워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되뇌어야 한다. 누구나 처음은 두렵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불완전한 나의 모습에 상처받는 것이 아닌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부족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단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여 아무것도 못하는 게 진짜로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외부자극에 내면이 계속해서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겐 큰 실패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큰 시련 없이 잘 해내온 나는 넘어져본 적 없이 걸을 줄만 알았기에 일어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나는 넘어져도 봐야 하고 샛길로 빠져 길도 헤매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겐 여행이 필요했다. 그것도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의 여행말이다. 여행은 다른 문화, 자연을 보면서도 느끼는 게 많겠지만 정말 내 생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인생과 경험을 통해 나를 비교하며 나를 좀 더 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누구는 그럴 수 있다. 남들 다 하는 퇴사하고 놀러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라서 구구절절 하소연하는 거냐고. 어쩌면 난 이번 1년짜리 여행을 전쟁을 나가는 심정처럼 준비하고 임하기에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대단한걸 꼭 얻어와야지만 이 1년이 내다 버린 시간이 아닌 당위성 있는 시간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잘 모르겠다. 감정이 너무 복합적이다. 이 감정을 천천히 해석하기엔 마음이 너무 급하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냐고요?


내가 여행에서 원하는 건 단 한 가지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나에게 행복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싫어하는 건 진짜로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아서 싫어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목표와 가치관은 무엇인지.

어렵다. 원래 인생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탐구하다 죽는 과정이려니. 하지만, 그동안 난 너무 나를 방관하며 살았다. 그 대가를 치르러 나는 멕시코행 비행기에 내 몸을 싣는다.


총 배낭무게 25kg, 첫 번째 나라 멕시코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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