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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14. 2023

단추 잠그기 첫 번째 단계는

단언컨대 떡볶이는 기적의 음식이다

”좀 어떠셨어요?“

“엄청 많이 안 좋았어요 선생님. 저 약도 먹어요.”


“저런.. 많이 힘드셨겠어요.“


50분은 정말 애매한 시간이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는지, 이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이제 절반 정도 시간이 지났으려나, 내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는 건 아닐까,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인데 내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하고 듣는다.


“기분이 좀 어떠세요?”


“배고파요 선생님. 저 떡볶이 먹고 싶어요.”


친구가 보낸 책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고 했는데. 속 시원히 이야기를 털어놓고 선생님과 함께 길을 찾아가다 보니 신기하게 배가 고파졌다. 요 며칠 그 좋아하는 떡볶이도, 곱창전골에 우동사리도, 불닭납작당면도 그 어떤 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는데 대화를 하고 나니 신기하게 배가 고팠다.


개인적으로 추가 상담을 받으려면 상담료는 1회당 10만원. 농담 삼아 ‘환자의 자발적 회복을 불러일으키는 상담 비용‘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상담 자체보다 내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나의 회복에 대한 과제 분석을 해 본다.

단추 있는 옷을 잠글 때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일까? 단추 잡기? 구멍 찾기? 단추의 위치를 확인하기. 잘못 끼우면 잘못 끼운 대로 언발란스하게 입을 수야 있겠지만 난 또 그런 건 용납을 못하는 FM이니까. 단추의 위치를 잘 확인하고 구멍을 잘 확인한 후에 넣어야 한다.


그동안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것들을 모아 본다. 다 ‘나’에 대한 이야기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골백번씩 가르치는 것이면서도 나에게는 그렇게 칭찬과 격려를 한 적이 없다. 의문만 가지고 의심만 했을 뿐이다. 편지지에 글씨를 크게 쓰게 될까 봐 걱정하는 내 아이에게 그렇게 괜찮다고 크게 써도 된다고 그런대로 너의 마음만 전하면 되는 거라고 답답해하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나에게는 야박했던 걸까? 메모지에 간단한 메모 하나를 쓰려고 해도 종이를 다섯 장씩 찢어가며, 괴로워하며. 이응 모양 하나가 무슨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작가 신청을 하고 통과가 되고, 작가 소개란에 ‘우울증 극복 생중계’라고 썼다. 언제 다시 울증이 올 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회복, 거창하게는 극복의 단계로 나아가 보고자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기분은 한결 가볍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가 촉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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