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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16. 2023

따뜻한 캐모마일 벤티 사이즈

창밖의 아침햇살과 찰랑대는 캐모마일 차를 보며

그거 아세요? 티바나는 톨 아니면 벤티 밖에 안된대요. 굿바이 사이즈업 쿠폰이 있길래 써보려고 했는데.. 톨은 티백이 하나고, 벤티는 티백이 두 개인가 보지? 그래서 사이즈업 해서 벤티 사이즈를 달라고 했거든요? 근데 그 쿠폰은 한정된 메뉴만 사용이 가능하대요. 그래서 다른 사이즈업 쿠폰을 사용하겠다 하고 캐모마일 벤티를 시켰어요. 너무 뜨거운 게 싫어서 얼음을 네 개 넣어달라고 했고요.


“시옷 고객님, 주문하신 따뜻한 캐모마일 티 드릴게요.“



여러분, 꼭 매장 머그잔에 벤티 사이즈 캐모마일 티를 시켜보세요. 진짜 캐모마일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게 찰랑대는 수프 잔을 볼 수 있어요. 사진을 찍어도 크기가 제대로 안 나오고 이 글을 썼다 지웠다 해도 이게 식질 않아서 입만 살짝 대어 보고 마시질 못했어요.


나아지고 있답니다. 마침 오늘은 햇볕도 나네요.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뭘 먹고 싶은 기분도 조금씩 생겨나고, 배도 고파지기도 하고, 과자를 사러 다시 외투를 챙겨 입고 편의점에 나갔다가 오기도 했어요. 어제는 처음으로 소갈비찜도 해보았어요. 생강 한 조각 400원, 당근하나 500원, 종량제 봉투 490원의 영수증이 웃겨서 친구에게도 남편에게도 이야기를 했어요. 중고 서점에 가서 책도 샀어요. 고르느라 시간을 많이 써서인지 집에 돌아와 읽을 기력은 없었지만서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부터 조금 해볼까 하고 친구에게 헬스장 이야기도 물어보고 신발장 안에 오래된 실내 운동화도 뒤적여 보았어요.


학교 동료 선생님이자 나의 존경하는 선배이자 사랑해 마지않는 언니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무척 괴로웠어요. 언니를 보자마자 신경안정제를 하나 털어넣고, 허튼 이야기를 하는 순간조차 지압기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언니가 덜 속상할까,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내가 덜 수치스러울까.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부끄럽고 창피했어요. 내가 느낀 모멸감과 절망감을 언니에게 전부 들키고 싶지는 않았어요. 언니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고, 언니에게 잘하는 후배, 씩씩한 동료 선생님이고 싶어요. 성장통이 너무나 커서 키가 250 정도 되어서 돌아갈 것 같다는 애먼 소리나 계속했어요.


스타벅스 플래너도 받았어요.

인스타그램에서 광고하는 글씨체 강의도 신청했어요.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불행은 남의 책임도 있지만, 행복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게 아주 작은 걸음이고 사실은 보이지 않더라도,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조금씩 기지개도 켜보고 몸도 일으켜 보려고 해요.


잘 정리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더 단단하고 말랑하고 힘찬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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