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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08. 2023

나는 우울증 교사입니다

나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

아침에 일어나서는 메스꺼움도 없었고 기분 좋게 배고픈 느낌만 있었다. 내가 옆에 있으니 편안히 조금 더 자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고, 엄마가 항상 보고 싶어서 엄마랑 유치원 가는 게 좋다는 아이의 말에 애매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학교 동료들에게 연락이 온다. 감기 몸살로 이야기가 되었는지 얼른 회복해서 만나자는 이야기의 메시지들. 걱정해 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한다. 동료이자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에게는 매일 걱정을 담은 시답잖은 문자가 온다. 오늘은 뭘 먹었는지, 매일 요리하는 거 사진 좀 찍어보내라든지. 아침에 아이의 등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이 친구 할머니께서 “오늘 학교 안 가요?”하고 물으셨다. “네, 재량휴업일이에요.”하고 대답했다.


침잠하는 기분이 든다.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약을 먹어서 그래.


아니, 내가 부정해서 그래.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전공서에 계속 나와. 수용이 안 되어서 그런 거야.


수용하고 그에 맞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수용의 단계가 나아가기가 너무 버겁다. 그래서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을 계속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반복한다. 결국엔 그 끝은 수용이 되어야 하고 객관화가 되어 제대로 된 도움을 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면서도.


두렵다. 누군가가 나의 우울을 안다는 게.

“제가 우울증이라서요.“라고 말했을 때 행여나 내 우울이 새어나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이 될까 두렵다. 연민과 동정까지는 이제 참을 수 있는데,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가 우울해질까 봐 두렵다.


어제는 병가를 더 사용하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겨울방학까지 병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두었으니 걱정 말고 회복에 전념하라 하셨다. 학년을 마무리하지도 못하는 담임교사가 되었다. 학부모가 연락이 올까 겁이 난다. 타당한 이유가 아니고서야 설득할 수 없을 텐데, 안쓰럽게 보는 것도 싫고 혹시 나 때문인가 죄송해하며 자책하는 것도 별로다. 난 그냥 나 때문에 가라앉은 건데. 감기 몸살로 알고 있는 다른 선생님들도 어차피 모두 알게 될까? 마무리 못해서 죄송하다고 커피라도 보내야 할까?


1년 감사했고, 죄송합니다. 커피 맛있게 드세요.

우울증 환자 시옷 선생으로부터.


목구멍이 턱턱 막히고 숨이 차오른다. 지난주부터 보건실에서 빌려 온 손 지압기를 매일 곁에 두고 있는다. 외투 주머니에는 항상 신분증을 넣어둔다. 혹시나 나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너무 몽롱하고 싫어서 약을 먹고 싶지가 않다. 선생님도 불편하면 약을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두렵다. 약을 먹지 않고 괜찮을까? 약을 먹어서 그나마 이 정도는 아닌 걸까?


진짜 정신병이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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