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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Dec 09. 2023

정신이 없는 순간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옆 콩나물국밥집

설거지를 하려고 수세미를 집어 든다는 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일반 쓰레기 위에 턱 올려놓았다거나, 새우젓을 떠서 국밥에 넣는다는 게 날계란이 담겨있는 바구니에 넣었다든가.


사소한 것들이다. 이런 정신없는 것들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진단을 받기도 전에 불안하게 만든다.


언제였는지 오지게 아파서 출근하지 못한 날. 다음 날 교장실에 불려 가서 투담임이라는 것은 그러려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고 외부 활동 하는 날이었는데 아이들이 담임이 없어서 되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은 날. 그날도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새우젓을 겨우 한 스푼 넣고 자꾸 숟가락이 떨렸다.


머쉬룸수프나 오늘의 커피가 줄 수 없는, 엄마한테 ‘나 아파, 아프대’하고 말한 것 같은, 뜨끈한 엄마의 품이 느껴졌다. 엄마가 가까이 있었으면 엄마한테 달려가서 엉엉 울었을까? 나는 그런 용기 있는 딸도 아니다. 엄마랑 같이 살았어도 콩나물국밥집에서 엉엉 울었겠지.


멀리에서 친구가 나를 보러 오기로 했다. 미리 잡혀 있던 저녁약속에 남편이 자꾸 내 눈치를 본다. 친구의 ‘그만둘까?’ 네 글자에 하루 종일 내 생각을 꾹꾹 담아 했을 친구의 모습이 선하다.


나의 불안은 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나는 이겨내야 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지금 정신병인지 아닌지, 모두 이 정도는 견디며 사는 거 아닌지, 다들 죽고 싶은 순간들, 차도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쯤은 가지고 사는 거 아닌지,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일을 안 해서 이렇게 계속 깊이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이 의아하고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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