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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 Nov 15. 2023

베스트 셀러 반디의 따뜻한 어느 날.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늘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앞을 보지 못하고 위만 보아왔던 예전의 내 삶과 닮아 있었다. 요즘은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반짝이는 별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수많은 별들이 거리낌 없이 어울려 서로를 더 빛나게 해 준다. 저 많은 별들 속에 존재할 때는 그저 하나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더 빛나지 못해 안달이 났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하나하나의 빛이 저마다 그 고유의 색을 띠고 소중하다. 그리고 서로 맞닿아 있기에 더 반짝인다.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갈 뻔했지. 5년 전 그때가 없었다면 말이다.


'어디쯤 왔을까?'


곧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과 함께 옆으로 돌아 누워 곤히 잠들어 있던 남편을 깨웠다.


"오빠, 다 왔대. 일어나 봐."


 밤마다 다리 저림으로 고생하던 남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꿀잠을 잤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니 지긋지긋하던 공황장애와는 이별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벽마다 다듬이질하던 소리가 희미해지면서 남편은 활기를 되찾았다. 그래. 늘 활기차고 도전적이던 그 남자의 모습이었다. 매일의 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어떤 날은 혼자 잘 자는 것이 미안해 일어나서 한 시간이고 다리를 두드려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나도 살아야 했기에 듣고도 모른 척했다. 누구는 외로움으로 누구는 죄책감으로 지낸 밤들이 무수히 쌓여갔다. 그 죄책감을 차곡차곡 쌓아 이번에 출간한 책 인세를 받은 돈으로 남편의 생일에 선물을 했다. 최신형 벤츠 s500 세단. 언젠가 차를 바꾸겠다고 했을 때 내가 번 돈으로 벤츠를 사주겠다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는데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아마 그날 이후로 밤마다 다듬이질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벌써 도착한 거야?"


"응."


 바르셀로나의 냄새는 여전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머물고 그렇게 긴 시간을 다른 냄새에 길들여졌음에도 그 특유의 냄새가 내 코는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새벽 5시. 이 시간에도 전화가 울린다. 미간을 찌푸리려다 입꼬리를 올렸다.


"여보세요."


"네, 작가님. 잘 도착하셨어요? 이번에 새로 출간할 작가님의 동화가 벌써 100만 부가 사전예약 되었어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 2위를 작가님의 책으로 장식하시다니... 역시 작가님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영화사에서 작가님의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요. 영화사 측에서 작가님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제가 지금 가족과 여행 중이라 여행이 끝난 후에 연락을 드린다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세요!"


 한달음에 돌아가 관계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지금 이 자리 그때를 기억하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날렵하던 턱선도, 헬스로 다져진 어깨 근육도, 그때의 모습은 어렴풋이라도 찾아볼 수 없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절친이 있고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이곳에 서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태생이 고급지지 못해 그런 걸까? 값비싼 와인보다 막걸리,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 불판에 구워먹는 솥뚜껑 삼겹살이 좋다. 남편이 물려준 28만 킬로미터 탄 15년 된 구형 폭스바겐과 작별할 때가 한 참이나 지났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고 추운 날, 더운 날도 마다하지 않고 나를 지켜 준 그 친구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3살인 둘째가 바닷가에 다녀오면서 주워 온 조개껍질로 유리에 선팅이 다 벗겨지도록 긁어 한참을 혼냈던 날도, 다 벗겨진 '아기가 있어서 천천히 갈게요' 스티커를 보며 이제 엄마 베스트 드라이버니 이건 좀 벗기자는 큰 아이의 앳된 목소리도, 그 모든 날을 함께 했던 친구를 떠나보낸다 생각하니 내 젊은 날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사라지는 것 같아 몇 번의 신차 시승식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자동차 병원비를 지불한다. 늘 이렇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면 한도 끝도 없기 마련인데 숙소를 정할 때도 남편과 나는 그때 그곳으로 정했다. 강산이 변했을 세월동안 여기서 그대로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여기서 이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세월을 맞고 있었나 보다.


"여보세요."


"응, 엄마."


"엄마랑 아빠 잘 도착했어. 너희는 어때?"


"우리도 잘 있지. 조금 있다가 검도 갔다가 같이 독서실 가려고."


"밥 잘 챙겨 먹고 엄마 갈 때까지 형이 아빠이고 엄마인 거 알지?"


"응. 걱정 말고 즐겁게 잘 다녀오세요."


"그래. 아들 고맙다."


늘 그랬듯 첫째는 하나뿐인 철부지 동생을 잘 보듬어 주고 동생은 그런 형아를 잘 따랐다. 두 아들을 낳은 일, 내가 이 세상에서 잘한 두 번째 일이다. 첫 번째는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을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것. 오늘은 함께 어떤 재미있는 날을 보낼까?

바르셀로나의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갓 구운 빵냄새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이곳저곳 다니며 구엘 공원에 이르렀다. 사실 그때는 가우디가 그렇게 대단한지도 몰랐다. 그냥 구엘공원이 예쁜 공원이라 사진 찍기에 바빴지.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 법. 사그리다 팔리리아 성당이 얼마나 더 높이 올라왔을까 확인해야 한다며 손으로 하나하나 층수를 세며 한가로이 앉아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한 곳을 함께 바라보며 추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슴이 따뜻했다. 저녁 식사는 그토록 먹고 싶었던 빠에야. 한국에서 빠에야를 먹어도 현지의 맛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리웠던 나의 빠에야. 과식의 더부룩함은 한국산 배아제 두 알을 털어 넣으며 깔끔하게 눌러버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지나는 상점마다 어서 들어오라며 날 유혹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작고 희미하게 들리는 상점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창문 안으로 들여다 보며 어떤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는지 보려는데 남편이 문을 당기며 나를 안으로 슬쩍 밀었다. 끼익 하며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잠깐 오르골 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내 귀를 간질였다. 예쁜 것들을 보니 예쁜 사람들이 생각났다. 예쁜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택하는 시간이다.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은 좀처럼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선택과 결정의 시간들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저 만성 피로의 내 일상에 비싼 영양제를 마음껏 들이부을 수 있을 정도의 밥벌이. 엄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일 년에 한 번쯤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여유.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너그러울 수 있는 다정함. 그리고 곁에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다는 것.


오늘도 지금 이 소중한 순간순간들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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