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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20. 2024

길치 엄마, 산에서 길을 잃다

카카오맵이 가르쳐준 대로 갔을 뿐인데

  엄마, 여기 길이 아닌 것 같아. 

  아니야, 길 맞아. 얼른 올라가. 

  엄마, 여기 길이 없는데. 다른 데로 가 보자. 

  여기 길 맞다니까.

  맞는 길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분명 카카오맵에서 본 지도는 이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는 나뭇가지 더미와 풀이 우거져 걸어갈 수가 없다. 어플이 여기를 가리키고 있으니 할 수 없이 눈앞의 나뭇가지를 손으로 올리면서 아이들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있는 순천에 놀러 갔다. 초보운전자인 나는 낯선 곳에서 섣불리 차를 움직이지 않는다. 도보로 가능한 곳을 찾다 보니 걸어서 7분 거리에 유아숲이 있었다. 기다란 미끄럼틀과 놀이 기구가 있고 숲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으니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대감을 안고 유아숲으로 향했다.


  생각과 달리 길이 험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이를 안아 들어올려야 했고, 어른인 나도 한 번에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이 가는 곳을 왜 이렇게 불편하고 위험하게 만들었담. 

  이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도가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길로 가볼까 싶어도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곳을 헤맬 자신이 없었다.


  먼저 올라가던 둘째 꿍이가 뒤돌아섰다. 

  엄마, 다시 돌아가자. 

  아니야, 꿍이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대. 우리 가보자. 올라가서 요구르트랑 오예스랑 먹자. 

  아이를 설득해서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7분 거리에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충분히 지났건만 유아숲 표지판도 안 보이고 길도 갈수록 이상하다. 지금이라도 내려가야 할까,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은 이 상황이 무서우면서도 재미있는지, 아니면 엄마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인지 산길에 있는 큰 바위와 나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무야, 혹시 유아숲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바위야, 혹시 여기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 봤어?

  엄마, 나무가 조금만 더 올라가면 유아숲이래. 사람들이 지나가는 건 아직 못 봤대.

  아이들의 질문과 셀프 답변에 웃음이 나왔다. '나무의 말'대로 조금만 더 걸으면 미끄럼틀과 놀이기구가 나오기를 바랐다.


  이상했다. 20분째 산길을 올랐는데 유아숲이 안 나왔다. 어린아이들이 갈 만한 곳을 이렇게 깊고 으슥한 곳에 만들어둘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그제야 직감했다. 우리가 끝까지 올라가 도착한 곳은 역시 유아숲이 아니었다. 옥녀봉이었다. 유아숲 놀이터를 찾다가 자그마한 산 정상에 오른 거였다. 주위를 둘러봐도 미끄럼틀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옥녀봉에서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순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상이었지만 마음 편히 경치를 감상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잘 따라와 준 아이들이 그저 고마웠다. 첫 목적지였던 유아숲 가는 길을 어서 찾고 싶었다. 카카오맵은 계속 근처에 유아숲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더 헤맬 수는 없어서 아무래도 포기하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 길을 물었다. 

  혹시 유아숲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아, 밑으로 10분쯤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보일 거예요. 길이 맞아야 할 텐데. 확실하진 않아요.

  내려가기 전 다시 한번 카카오맵을 들여다봤지만, 지도는 여전히 엉뚱한 곳을 가리켰다. 일단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참 내려가다 보니 산길을 잘 내려갈 수 있는 평탄한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잘 닦여진 편한 길을 두고, 굳이 수풀을 헤치고 엉뚱한 길로 올라온 거였다. 그리고 길 왼쪽에 알록달록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저기다!

  첫눈에 유아숲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유아숲으로 뛰어갔다. 다행이다. 결국 찾아냈다.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색 구름, 시원한 바람에 마음이 탁 트였다.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평상에 앉아 하늘과 구름을 실컷 눈에 담았다. 불평 없이 길치 엄마를 믿고 잘 따라와 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다음 번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작정 움직이기 전에 주위를 여러 번 살펴야지, 아이들과 어딘가를 가려고 하면 충분히 정보를 찾고 움직여야지, 그래도 재미난 추억 하나를 만들었구나 생각하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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