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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22. 2024

23년 전, 점심시간에는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문장을 읽고

  나에게 노래는 듣는 기쁨일 뿐 부르는 즐거움은 되지 못했다. 노래를 많이 못하는 편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썩 나아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음과 다른 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듣고 있으면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아주 싫어할뿐더러 혼자 있을 때도 노래를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를 재우며 동요와 자장가를 불러줘야 할 때가 생겼다. 조금 뻔뻔함이 생겨서 더이상 자장가가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에게 장난스레 노래를 불러줄 때도 있다. 아이들이 그만, 그만하라며 손을 내젓는 모습이 재미있어서다. 

  엄마,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은 안 하는 거야.

  노래를 멈추지 않으면 작은애는 허리에 두 손을 올리며 내가 했던 말을 진지하게 해준다.




  그랬던 내가 뭣도 모르고 고등학교 때 중창단 동아리에 들어갔다. 순진했었다. 학기 초에는 동아리 선배들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와서 동아리를 홍보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중창단 동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는 선배들의 모습에 멋져 보였다.

  노래 못 불러도 괜찮아요. 들어와서 배우면 돼요.

  선배의 말과 미소가 친절했다. 매일 연습하고 배우면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노래 부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1학년은 10명 정도의 부원이 모집되었다. 노래를 못해도 괜찮다더니! 아니었다. 다들 노래를 잘했다. 고운 목소리로 높은음을 잘 내는 친구, 묵직한 소리로 무게감을 만들어주는 친구,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친구까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동아리 첫 모임 때 알게 되었다. 그때 느꼈다. 인원이 부족해서 내가 뽑혔구나. 한 명만 나처럼 노래를 못하는 비슷한 친구가 있었으면 의지가 되었을 텐데. 연습할 때마다 울적해졌다.


  점심시간마다 음악실에 가서 연습을 했다. 선배가 피아노를 치면 신입생들은 노래를 불렀다. 

  아니지, 아니지. 다시 해봐. 거기서 음이 떨어지잖아. 안 떨어지게 다시.

  노래도 많이 불러보고 들어봤어야 음이 떨어지는지 아닌지 알지. 내가 듣기에는 다 비슷한데. 배에 힘을 주고 보이지 않는 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소리를 뱉어냈다. 눈썹을 들어 올려서 음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했고(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횡격막을 느껴보라고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느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선배들에게 한번이라도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다들 노래를 잘하는데 나만 못 불렀다 심각하게. 연습을 해도 그다지 느는 게 없어서 동기들에게도 미안했다. 중창단이어서 인원이 적으니 내 소리를 작게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신경을 써서인지 그때부터 신경성 위염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동기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노래를 부르는 동아리에 들어간다고 했을까 후회가 됐다. 노래뿐 아니라 선배들에게 인사를 꼬박꼬박 잘해야 하고 생일 때는 선배 선물도 챙겨야 하고, 신입생 오티를 핑계로 불을 끈 음악실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선배들의 무지막지한 혼냄을 듣고 있으면(노래와 관련 없는, 1년 선배에 대한 인사나 예의 등을 이유로) 내가 왜 제 발로 여기 왔던가 자책을 했다.



  힘들고 괴로웠지만 의외로 재미있을 때도 있었다. 각자 연습을 하다가 모여서 화음이 만들어지는 것을 듣고 있으면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잘하지는 못해도 꾸준히는 한 덕분에, 그리고 동기들이 노래를 잘 부른 덕분에 중창 대회에도 나갔다. 학교 축제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했다. 부끄럽고 수줍은 많던 내가. 혼자였으면 절대 못할 일이었겠지만 친구들이 있어서 용기가 났다.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난 못한다고 할 수도 없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웃음이 나는 추억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나는 끝까지 동아리에서 역할을 해냈다. 잘해보려고 연습했고 함께 화음을 맞춰가는 시간들이 좋았다. 부끄럽고 힘들었고 괴로웠지만, 그걸 참아낸 내가 대단하기도 하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 힘들다고 선배들에게 말하고 동아리를 나와서 점심시간을 홀가분하게 보낼까, 처음부터 아예 동아리에 들어가지도 않았을까, 아니면 어차피 연습하는 거 못해도 자신감 있고 즐겁게 노래를 부를까. 슬며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아련한 상상을 해 본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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