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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위로

정말 감사했어요

by 여름

집 앞 상가에는 작은 김밥집이 있다. 주문이 많아서 전화로 예약을 해야 몇 시간 후에 받을 수 있고, 오로지 포장만 가능하다. 아침 6시에 문을 여는 대신 오후 3시에는 문을 닫아, 저녁에는 이용할 수가 없다. 조금 더 걸어가면 바로 주문과 포장이 되고 가게 안에서도 먹을 수 있는 김밥집이 여러 곳 있지만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집 앞에 가는 이유가 있다. 달걀지단이 소복이 들어간 기본 김밥은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고 맛이 있을뿐더러 주인아주머니에게 괜히 마음이 가서다.


울이는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온갖 감기를 달기 시작했다. 코감기, 인후염, 중이염, 미세기관지염 등등. 한 달에 스무날 이상 약을 먹었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휴대용 네블라이저도 샀다. 기관지염으로 컹컹 대는 기침 소리가 나면 아이 등을 두드려주면서 자책했다. 어젯밤 방 안의 습도가 너무 낮지는 않았는지, 온도는 적당했는지. 자주 아프니 괜히 엄마 잘못인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아이가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전화로 주문을 해두고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울이가 갑자기 귀가 아프다고 했다. 혹시 또 중이염인가 싶어서 급하게 소아과로 달려갔다. 진료 시간이 끝난 뒤였지만 부탁을 드려 겨우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약국에서 항생제를 처방받아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길, 예약해 뒀던 김밥이 그제야 생각났다. 방문하기로 한 시간에서 30분 넘게 지나 있었다. (이때는 김밥집이 6시 30분까지 영업을 했다.)


급히 가게에 전화를 하고, 김밥집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문 닫을 시간이 지났는데. 아이가 갑자기 병원에 가는 바람에.

에구, 어째요. 아이가 아픈가 봐요.

네, 중이염이래요.

괜찮아요. 그맘때 아이들 다 아프죠. 우리 애도 애기 때 항생제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그래도 지금 대학생인데 키가 180이 넘고 아주 건강해. 너무 걱정 말아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포장된 김밥을 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불안하고 고단했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주인아주머니의 푸근한 미소와 다 이해한다는 눈빛, 불안과 걱정을 알아주는 것 같은 선배 엄마의 말 한마디에 지쳤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에는 힘이 있다. 아마 아주머니는 몇 년 전 그날의 말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덕분에 감사했고 마음이 든든했다. 울이는 일곱 살이 되자 감기에 걸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여섯 살 때만 해도 천식이 의심된다며 검사를 해보라는 병원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몇 년 전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또 다른 걱정거리에 고민하고 있지만 이 또한 지나고 나면 스르륵 잘 해결될 것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느긋한 마음으로, 지금과 앞으로를 바라보고 싶다.



이미지: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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