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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0. 2024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양갈래로 반듯하게 머리를 묶은 다섯 살 여자아이는 베이지색 외투를 걸치고 가방을 야무지게 매고 있었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다가 엄마를 보고는 입술이 삐죽삐죽했다. 금세 눈에 눈물이 차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유치원 하원 버스를 함께 기다리던 별아 엄마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엄마 대신 할머니가 별아를 데리러 나오셨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별아 엄마가 하원길에 나왔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지훈이가 입원해서 계속 병원에 있었어요. 우리 별아는 엄마가 집에 온 줄 모를 거예요. 아구, 나 보면 놀라겠다.

  지훈이가 아팠어요?

  네, 말도 마요. 마이크로 플라즈마, 그거 엄청 독하대요. 수액을 맞아도 열이 안 내려서 집 앞 소아과에 입원했다가 큰 병원으로 전원 했어요. 5일 만에 열이 내리더라고요. 기침은 여전히 심해요.


  별아 엄마는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별아의 오빠가 열흘 동안 입원을 하는 바람에 동생은 할머니랑 지냈다. 별아가 보고 싶어서 아이가 퇴원하자마자 급하게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였나보다. 별아는 등원할 때 시무룩했다. 아이에게 엄마는 우주인데, 엄마를 갑자기 볼 수 없으니 속상하고 슬펐을 거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갔을까. 다섯 살 꼬마 아이는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엄마는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도 얼마나 막내 아이가 눈에 밟혔을까.


  버스에서 내리던 별아가 엄마를 보고 멈칫하던 그때, 반가움과 서러움에 금세 눈물이 나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시큰거렸다. 아이에게 엄마가, 엄마에게 아이가, 서로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다.



  뭉클했던 것도 잠시. 하원하고 나서 집에 가면 아마도 잔소리가 시작될 거다. 옷을 제자리에 둬라, 놀고 나면 정리를 해라, 밥은 앉아서 먹어라, 입에 물고 있지 말고 씹어라, 밥 먹고 나면 바로 양치해라, 칫솔 물고 돌아다니지 마라, 늦게까지 놀지 말고 빨리 자라, 자꾸 안 자면 내일 아침에 안 깨워 줄 거다.

  아이들은 엄마가 맨날 화를 낸다고 했다. 엄마가 말하면 귀찮아서 못 들은 척하다가 언성을 높이면 마지 못해 몸을 움직였다. 엄마가 화를 자주 내지만 그래도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는데. 아이들이 엄마의 마음을 오해할까 봐 살짝 불안해졌다. 오늘은 잔소리를 조금만 더 줄이고 그 틈을 사랑한다는 말로 채워봐야겠다.


  아이 옆에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는 평온한 일상에 감사해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사랑의 잔소리라고 하더라도 목소리를 조금 더 낮추고 부드럽게 아이에게 말을 건네 봐야지.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순간, 별아의 마음을 떠올려봐야겠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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