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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19. 2024

가을을 붙잡다

  길가에 낙엽을 담은 자루가 보였다. 자루가 배를 내민 채 떨어진 잎들을 수북이 담은 것 무색하게 바닥에는 낙엽들이 흩어져 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나무는 모르는 척 잎을 떨궈내고 새초롬히 본래의 가지를 드러냈다. 초록잎을 자랑하던 풍성한 여름 나무는 어느새 가을을 지나는 중이다.


  가을 무렵,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면 마음이 어수선하고 쓸쓸해졌다. 이게 다 누렇게 익은 벼 때문이다. 농부의 정성을 담아 알맹이를 채워가는 논의 풍경이 나에게는 초조함으로 다가왔다. 마른 모래가 두 유리그릇 사이를 통과하는 모래시계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뭘 했지, 남은 두어 달 뭘 해야 하지. 누군가에게는 수확과 결실의 계절, 나에게는 허전함과 막막함의 계절이었다.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단풍에 시선이 멈췄다. 지금은 가을이구나. 여름이 지나길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지 않기를 바랐던 것도 같다. 가을은 서둘러 가버릴 테고, 겨울에는 몸과 마음이 추워질 테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을 탓하면서도 길었던 여름에 은근히 좋았다. 아직은 여름이니까 괜찮아. 지금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가을이 반갑지 않았다. 단풍을 보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무르익은 벼를 보면 초조해졌다. 그동안 한 것이 없다는 불안감, 남은 시간들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지금에 머물러 있어야지. 아직 11월 중순. 올해가 한 달 넘게 남아 있다. 가을을 만끽하는 방법들로 11월의 계획을 다시 세워본다. 아침 산책을 하면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무와 인사하고, 노랗게 물든 거리도 걸어봐야겠다. 하루는 도서관에 가서 책상 위에 책을 잔뜩 쌓아두고 종일 책을 읽어야지. 그윽한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 구경도 해야지. 가을이 서둘러 지나가버리기 전에 자주 가을을 느끼고 바라봐야겠다. 올 가을은 허전하지 않게,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우면서 꽉 찬 계절을 보내고 싶다.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아이가 마스크를 내리고 손을 앞에 대더니 하고 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깜짝 놀라 목도리와 장갑을 꺼냈다. 벌써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걸까. 가을과 친해져 보려던 참이었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오늘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으러 나가봐야겠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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