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찬 바람이 두터운 옷을 뚫고 피부에 스며들었다. 옷깃을 꽉 조이며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둘째 하원 시간이라 버스 정류장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대여섯 명이 우르르 지나가고 있었다. 무리가 길을 차지하며 걷는 바람에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흘깃 보니 가운데에 서 있는 아이가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이었다. 옆을 스치는 찰나, 짧은 대화가 들렸다.
"제 차가 람보르기닌데요."
무슨 통화일까. 내 눈과 귀가 그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 표정에는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 듯 웃음기가 가득하고, 당당한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옆에 있는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통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갑자기 람보르기니라니. 저 아이가 차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이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어 상대편 목소리가 들렸다.
"여, 보세요?"
'여' 발음에 화를 누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40대 정도의 여성인 것 같았다. 상황을 추측해 보니 아마도 상담원이 건 전화에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듯했다. 아이들의 짓궂음과 이를 참아내야 하는 여성의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상담원이 된 것마냥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런 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까.
상대가 걸어오는 심심풀이 장난에 기분이 언짢아졌을 때. 기분이 나쁘다고 버럭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꾹 참고 마음 저쪽으로 치워버릴지 고민되는 순간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장난치면 안 돼, 따끔하게 혼을 내고 싶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장난을 사과할 리가 절대 없다. 상대방이 발끈하는 반응에 재미있다고 깔깔 웃을 것이다. 통화 중인 사람이 아이들의 장난이라는 걸 인지하고 대답 없이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도, 왠지 당한 것 같은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담원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대처할 도리가 없을 것만 같아 안타까워진다. 어쩌면 한번 피식하고 말 사소한 일인데 나 혼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선생님께 대드는 학생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댓글에는 학생의 무례함을 탓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영상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자 선생님과 긴 머리의 여학생은 대치 중이었다. 학생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비스듬히 선 채, 마치 자신이 어른이고 선생님이 아이인 것처럼 따지고 있었다. 학생이 화가 난 이유는 선생님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학생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도 되냐는 것이었다. 삐딱한 자세와 큰 목소리로 대드는 학생과 이를 마주한 선생님의 당황스러움이 영상 밖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선생님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잡아당긴 것이 아니라 가방을 잡다가 실수로 그렇게 되었다는 해명과 네 태도를 위원회에 말하겠다는 것.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영상을 찍고 있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화를 꾹 누르며 뒤돌아가는 선생님에게 학생은 위원회에 얘기하세요, 외치고 있었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선생님이 느꼈을 서글픔과 분노가 마음에 계속 남았다.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어른도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은 아직 그걸 알지 못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어른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 그래도 어른이니 아직 어린아이들의 장난을 보듬어주고 너그럽게 이해해야 하는 거겠지.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어른들이 속상하고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이 어른에게 따지고 어른은 그저 뒤돌아서야 하는 상황이 못내 답답하고 울적해졌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옳은 것과 바른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위 말하는 꼰대의 말이라고 단정해버리고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리고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올바른 가르침이 그저 꽉 막힌 기성세대의 말로 치부되는 것들에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말만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상대방 입장에서 헤아려보고 내 잘못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그렇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 어른의 말이라고 해서 고지식할 것이라 단정하지 않고, 아이의 말이라고 해서 미성숙하다고 규정하지 않는 것.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주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온화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