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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11. 2024

손잡이에 양면테이프를 두 겹씩 바른 이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지는 일이 생긴다. 예를 들면,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가득 채운 뒤 금방이라도 넘칠 듯 찰랑거리는 것을 즐기며 조심조심 식탁으로 가져오다 결국 물을 쏟게 되는 일. 책상에 종이와 연습장이 있는데도 굳이 책상 위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 책을 읽을 때면 자꾸 손가락도 저절로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 있는 일 등등.




  아이들 등교 등원이 끝나고 오전 일과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낯설고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손바닥에 뭔가 찐득한 것이 달라붙었다. 손잡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약간 누런 것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이게 뭐지? 문 옆을 보니 양면테이프와 테이프를 떼고 남은 껍질이 놓여 있었다.


양면테이프를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손잡이에 테이프를 붙여 놓은 게 분명했다. 화장실 문 손잡이에 양면테이프를 바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도 겹겹이. 첫째는 학교에, 둘째는 유치원에 갔으니 이유를 물어볼 수가 없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할 일도 많은데, 시간을 들여 화장실 손잡이에 매달려 테이프를 떼고 있어야 하다니. 꼼꼼히 붙여놓은 걸 보니 쉽게 떼어질 것 같지 않다.




  스티커를 떼는 법을 알아둔 적이 있다. 예전에 아이들이 문이나 칠판에 스티커를 붙여 두면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쉽게 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안 쓰는 선크림을 스티커 주변에 바른 후 30분쯤 지나서 살살 긁으면 된다. 기한이 지난 선크림 샘플이 어디 있을 텐데. 서랍장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쓰고 있는 선크림을 가져와서 화장실 손잡이에 정성스레 발랐다. 이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스티커 떼기 작업 중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다시 화장실 앞으로 와서 양면테이프를 살살 긁었다. 테이프가 조금씩 떨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대체 얼마나 꼼꼼히 테이프를 발라 놓은 거야! 순간 화나는 마음이 올라왔다. 화를 내도 소용이 없다. 다시 선크림을 손잡이에 더 정성스레 발랐다. 기다렸다. 살살 긁는다. 조금씩 테이프가 떨어졌다. 아직 테이프가 손잡이에 남아 있다. 다시 선크림을 바르고 기다렸다. 이런 작업을 서너 번을 반복했다. 그런 후에야 손잡이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교 후 울이에게 물었다.

  화장실 손잡이에 테이프 울이가 발랐어?

  으응.

  왜 바른 거야?

  아, 그게.

  아이는 엄마가 혼낼 거라고 예상했는지 대답을 머뭇거린다.

  실은 집에 도둑이 들어오면 문 손잡이를 잡고 손이 안 떨어지게 해서 잡으려고 한 거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테이프를 바른 건지, 단순히 재미로 바른 후에 엄마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다.

  그거 떼느라 엄마 힘들었어. 이제 안 발라도 돼.

  으응, 알았어.




  아이 마음속이 궁금하지만 진실은 알 수가 없다. 가끔, 아니 수시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대체 왜 일을 만들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귀찮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화는 걷잡을 수 없다.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도 화가 쑥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아이니까 그렇지." 하고 생각할 때다.


  어렸을 때, 자꾸 화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고 무서워했었다. (지금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된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잘하려고 그런 건데, 자꾸 혼이 났다. 지금 울이가 보는 내 모습은 내가 어렸을 때 느끼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른의 눈으로 보면 아이의 행동이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 아이를 탓하기 전에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조금은 더 다정하고 편안한 엄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나와 엄마를 겹쳐 본다. 많이 닮아 있고 비슷하지만 또 다른 우리를 생각해 본다.


  아이니까 그런 거야. 실수해도 괜찮아.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자꾸 혼나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괜찮아. (그래도 양면테이프는 잘 안 떨어지니까 손잡이에 붙이지 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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