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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Mar 20. 2024

배냇저고리

“잠깐만. 이거 가방 안 깊숙이 넣어서 가져가. 미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구.”

“어. 알았어. 근데 이게 뭐야?”

“배냇저고리. 너 태어났을 때 입었던 옷. 늦겠다 얼렁 가. 시험 잘보구.”


 큰아이가 수능시험 보러 가던 날, 가방 깊숙이 배냇저고리를 고이 접어 넣어 시험장으로 함께 떠나보냈다. 누가 보면 극성맞은 엄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해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 최선이었다. 


 고3이 되고 나서 집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아이를 제대로 보살필 수가 없었다. 공부에 큰 뜻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학에 가고 싶었는지 시험 전 몇 달은 수척해보일 정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배냇저고리 덕에 시험을 잘 봤다면 정말 세상은 불공평한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다. 아이는 시험을 망했다. 그리고 재수를 했다. 

 

 나는 재수 시켜줄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공부에 뜻을 보이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재수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수능 끝나고 두어 달 입씨름을 하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이는 재수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수능날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작년에 고이 접어놨던 배냇저고리를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 


“이거 꼭 가져가야해?”

“응. 미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구.”

  뫼비우스띠처럼 상황도 대화도 무한 반복처럼 또 되풀이 되고 있었다. 부슬부슬 이른 초겨울 비가 내리고 수능시험 마지막 종이 울리면서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 망했어. 진짜 올해는 열심히 했는데......”

 올해도 배냇저고리 운은 없는가보다 생각했다. 막상 성적표가 나왔을 때 생각했던 것 보다 성적이 좋았다. 나는 속으로 거봐 배냇저고리를 품어서 그런거야. 삼신할머니 고맙습니다. 절로 고마움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정말 빈약하고 간사한 인간의 마음을 지녔다. 


“언니 정우 시험 어떻게 됐어? 컨설팅 받아봤어?”

“시험은 그런대로 봤고 그냥 알아서 대학 가겠지. 내가 뭘 알겠어.” 

“그래도 요즘은 대학 엄마들이 보낸다는데 언니 너무 무신경한거 아냐?”

“난 그래도 시험 날 배냇저고리 넣어서 보내줬어.”

“뭐? 배냇저고리? 왜?”

“시험 날 배냇저고리 옷에 품고 가서 시험 보면 잘 본다고 하잖아.”

“도대체 언니는 어느 시대 사람이야?”

“그러게... 나두 생각해보니 진짜 웃긴다.”


 큰아이 시험 준비로 그해 내내 미역국도 먹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임에도 입에도 대지 않았고 심지어 식구들 생일날에도 미역국은 올라오지 않았다. 작은아이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내 생일인데 왜 오빠 재수로 인해 미역국도 못 먹느냐고. 그렇게 작은 아이에게 상처주는 행위도 서슴치 않고 보냈던 한해였다. 내 마음이 절박해서였는지 아니며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정말로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에 엄마가 푸념처럼 한 말이 생각났다. 오빠는 4수생이였다. 공부에 뜻이 없는데  맏이고 종손이니. 대학을 꼭 가야만 엄마의 모진 시집살이에서 살아 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집착에 가깝게 매달렸다. 시험 볼 때마다 두툼한 겨울점퍼 속에 오빠의 배냇저고리를 꼬매서 시험장에 보냈다고 한다. 아마 용하다는 점집에 찾아가서 사온 부적도 같이 넣었을 것 같다. 엄마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고 오빠는 지방 사립대에 가고 졸업 후 학자금 빚잔치를 했다. 


 내 아이와는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파편이 이렇게 날라 와 꽂힌다. 무지해 보였던 엄마의 행동이 내 무의식속에 살아남아 이렇게 나의 몸으로 또 다시 현실세계에 펼쳐지다니. 이게 정말 모성일까. 집착일까.


  나는 대체로 물건을 잘 정리하고 버린다. 내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곁에 두지 않는 편이이다. 짐같이 느껴져서. 될 수 있는 한 사지도 않는다. 그래도 20년 결혼 생활 속에 정리되지 않은 자잘한 살림살이 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렇게 잘 버리는 내가 아이의 배냇옷과 처음 아이를 품었던 아가띠는 이삿짐마다 끌고 다닌 걸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수능날 가방 안에 넣어줄 걸 생각하고 이렇게 고이 모시고 다녔나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래 나도 엄마다. 무지한 엄마다. 하지만 이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내 무언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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