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의 직업은 국가 공무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립공원 관리공단직원이다. 직업부터 소개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나의 삶의 궤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어린 시절 나는 촉망받는 복싱선수였다. 시골동네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양아치들과 어울리다 읍내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낡아빠진 간판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체육관이었지만 관장은 무림의 고수 같아 보였다.
나의 손놀림과 발재간을 보더니 복싱을 해보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동네 양아치로 사는 것 보다는 복싱이 좀 더 폼 나 보였다.
소싯적 놀던 가락이 운동신경으로 발현되어 전국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골동네에서는 빚까지 얻어 돼지도 잡고 거나하게 잔치도 벌렸다. 다 떨어져나가던 체육관 간판에는 ‘축 전국체전 복싱금메달리스트 000’라는 플랜카드도 걸렸다. 부(富)는 없었지만 명예에 취해 나는 동네 해결사 노릇까지 하고 다녔다. 운동은 점점 멀어지고 주먹은 점점 가까워졌다. 결국 한 번의 메달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해버렸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스카웃 소식이 들려왔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도외지 오야붕이 나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오야붕이 원정을 나왔다가 체육관 플랜카드를 보고 금메달에 꽂혔다고 한다. 오야붕이 우리조직도 이제 엘리트를 영입해서 한 차원 고급지게 조직을 업그레이드 해야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열변을 토했다. 침도 튀기고, 욕도 튀기고, 꼬붕들도 튀기면서 여하튼 나는 그렇게 스카웃이 되어 있었다. 조직의 일은 복싱보다는 쉬웠다. 그냥 아침에 형님 안부인사하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수금하고 다방 들러 레지들이랑 농담하다가 애들이랑 밥 먹고 퇴근하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영화에서 보듯이 조직은 그렇게 험한 곳이 아니다. 체력단련도 하지 않는다. 오직 몸집만 불린다. 돼지사육장마냥.
이렇게 한 세월 보내다가 식당 사장이 스카웃 제안을 해왔다. 칼솜씨가 남다르니 조리사자격증을 따서 우리 식당에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조직은 오래 있을 곳이 아니었다. 마침 오야붕이 다른 조직으로 흡수되는 바람에 우리 조직은 구조조정이 들어가 나는 손가락을 자르지 않고도 이직을 할 수 있었다. 손가락도 무사히 사수하고, 현란한 칼솜씨는 이제 채소와 고기로 합을 맞추었다.
남 밑에서 일하는 것은 고된 일이다. 남의 밥을 해주는 일은 더 힘든 일이다. 식당에서 언제까지 주방장으로 살아갈지 막막할 때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이번엔 국가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다. 나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곧바로 산속으로 출근했다. 새로운 직장은 산속에서 매표하는 직업이었다. 국립공원관리법에 의해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차량은 통행세를 내야한다. 국가의 법이 그렇다. 그런데 국가라는 게 얼마나 세금을 뜯어 잡수시려는지 문화재법이라는 것도 만들어서 사찰 땅을 통과할 때 또 통행세를 낸다. 이놈의 법이 나의 탈모의 원인이 되었다. 암말없이 천원을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시비를 건다. 왜 절에서도 받고 너네도 받느냐면서 오만 욕을 퍼붓고는 거지 동냥하듯 휙 던져버리고 가는 일이 다반사다. 나의 하루일과는 욕먹고 돈 받는 일이다.
진짜 병원에 가야할 정도로 심각한 원형 탈모가 왔는데 진짜 진상도 같이 찾아왔다. 욕만 했으면 참았을 텐데 이 새끼가 별별 시비를 다 걸면서 모욕감을 줬다. 나의 본능이 살아났다. 진상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뒤통수에 끊임없이 육두문자가 날라 왔다. 나는 곧바로 사복으로 갈아있고 차문을 열었다.
“나 정말 착하게 살려고 그랬는데 당신 때문에 오늘부로 이 직장 스탑. 이제 계급장 띠고 나랑 따이따이로 붙어보자 이새끼야. 너 지금까지 뭐라고 했어. 어?”
기세등등하던 민원인 진상이 왕년의 나의 모습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는 통행세를 두 손으로 곱게 건네주고는 도망 가버렸다. 역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가보다.
그렇게 산속에서 계약직 매표원으로 살다가 더러워서 정직원 시험을 봤다. 정직원은 매표소대신 대피소로 출퇴근한다. 산 아래에서 출근시간만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여기도 진상들은 넘쳐난다. 다쳤다고 신고가 들어와 구조작업 들어가면 술에 만취해 있는 건 다반사다. 말도 안 되는 시비 거리를 가지고 하루 종일 민원전화가 울려된다. 탈진상태에서 물을 가져가면 자기는 이온음료만 마시는데 물을 가져왔다고 화를 내는 건 애교수준이다. 물품장고에 햇반 개수가 맞지 않는 날은 미쳐버린다. 그렇게 나는 산에서 도를 닦으며 산다. 세속의 일은 잠시 묻어둔 채.
“여보 00이가 미용실에서 머리하고 왔는데 30만원이 넘게 나왔어. 중학생이 머리하는데 이거 좀 심하지 않아?”
“쪼매 기다려봐라. 동생 하나 보내서 물어 볼 테니.”
“행님 미용실원장이 바로 카드 환불해주던데요.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기양 행님 딸이 여기서 머리했는데 30만원이 나왔다케서 궁금해서 왔다니까 바로 환불하던데예.”
“너 반팔입고 갔지?”
“와예?”
“니 팔에서 용이랑 호랭이가 춤을 췄을 텐데.......”
띠리링
“행수님 지금 00식당에서 아줌마들이랑 식사하시던데요.”
띠리링
“행님, 행수님 지금 국도로 차 몰고 어디 가던데요. 따라가 볼까예?”
띠리링
“행님. 행수님이......”
“고만해라. 나 산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행수 보고 안해도 괘안타”
누가 나한테 이쁜 우리 마누라 걱정 안되냐고 물어본다. 걱정 안된다. 동생들이 사방에 쫙악 깔려있어서 괘안타. 내가 산속 진상들 때문에 문제지 세속의 일은 아무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