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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May 31. 2024

여우 누이 2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돈은 더 많이 들어갔다. 다행히 교복을 입기에 아이의 행색에서 우리의 삶이 드러나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파출부로 청소부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은 아이 학원비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다행은 그렇게 부서져라 일하고 번 돈이 헛돈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보여주었다. 매달 보내주는 성적표는 항상 상위권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 부부의 삶도 아이를 통해 그런 상위권에 머무르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아이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유치원과 달리 우리 사는 형편은 친구들에게 몇 마디 거짓말로 가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노골적 멸시가 느껴졌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우리와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돈만을 요구했다. 이런 것도 해주지 못 할 거면서 왜 낳았냐는 말은 그냥 일상 다반사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구색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아이 아빠가 크게 다쳐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이번 달 학원비와 레슨비를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물어왔다. 아이 아빠는 목이 메이는 낮은 목소리로 미안하다고만 말하고, 아이의 얼굴을 외면한 채 눈물을 삼키면서 사과했다. 내 육신이 다쳐서 아픈 것보다 아이의 말이 더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스물이 되어 대학에 들어갔다. 집은 서울 변두리 월세에서 반지하로 반지하에서 결국 불법 비닐하우스로 옮겨 살게 되었다. 아이는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의 삶이 들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질 때는 두서너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헤어졌다. 아이는 자신의 삶을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다. 늘 긴장된 삶이었지만 그렇다고 진짜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잘 포장된 자신의 모습이 그들에겐 진짜였기에.


 “제발 말 좀 해봐.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아이가 자해를 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돌아누운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는 아이의 입에서 다 끝났다는 말만 되풀이 되어 흘러나왔다. 

 대학에 들어간 아이는 이전의 긴장감을 조금씩 느슨하게 늦추고 있었다. 방심해서였을까 아이의 불행은 그렇게 닥쳐왔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어느 날 조금 과하게 과음을 하고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이 아이의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로 택시를 타고 비닐하우스 앞까지 와버렸다. 다음날 학교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잘 포장되었던 속 알맹이의 진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 버렸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구랑 어울린거야? 너 영유에 00사립초 나온 거 맞니? 그런 집에서?” 


  초중고에서 알고 지내던 몇몇 친구들의 입을 통해 아이의 거짓말들이 빠르게 퍼져 나가버렸다.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온몸으로 느껴졌다.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다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학교도 나가지 않은 날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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