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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빨간 갱년기 Jun 09. 2024

내 복으로 산다3

 기울어져가던 친정이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살던 살림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니 엄마도 어느새 늙어있었다. 그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살림이 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엄마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빠네 집은 무엇이든 퍼주면서 그 공치사를 나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섭섭한 내색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나에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공치사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말은 엄마에게는 늘 잘했다 고맙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사달은 사소한 감정이 쌓이다가 엉뚱한데서 튀어나오는 것 같다. 오빠보다 결혼은 늦게 했는데 아이는 먼저 생겼다. 그게 그렇게 시샘이 났는지 오빠도 없는 아이가 먼저 생겼다고 축하한다는 말 대시 핀잔을 받았다. 이게 비수가 되었는지 아직도 이 말에 대한 앙금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큰아이를 낳고 친정집에서 산바라지를 받던 첫날 새언니가 수줍게 얘기를 했다. 

“어머니 저 아기 생겼어요.”

 그때 엄마 표정을 잊을 수 가 없다. 입이 귀에 걸려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게 나 때와는 너무나 다른 반응이라 내 마음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서글펐다. 


 그렇게 산바라지를 받고는 미련 없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내 방식으로 아이를 키웠다. 엄마가 뭐라고 하든 그냥 내 의지대로 살았다. 


“내가 딸이 많은 것도 아니라 달랑 너 하나 있는데 넌 어째 그리 야박하냐.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전화도 없고 손가락이 부러졌냐. 옆집 00는 그렇게 엄마한테 잘한다는데 너는 .......”

“......”


“내가 오늘 절에 가서 열심히 부처님한테 빌어서 니네가 그렇게 집도 사고 잘사는거야.”

“......”


나는 내복으로 내덕에 사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엄마는 엄마 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그냥 그렇다고 치고 전화도 가끔 해서 엄마 공치사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만 맞장구치면서 들어준다. 


그래도 난 내복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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