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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트 Dec 02. 2023

진실은 잔인할 수도, 따뜻할 수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진실을 '잘' 이야기할 줄 아는 것

며칠 전 X(구 트위터)를 떠돌다 이러한 사진을 봤다.

이걸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생도) 많이 고민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빈말 하기 싫어.


솔직히 고등학생일 때의 나는 그냥 내가 느낀 점을 바로바로 말했다. 너의 이런 점이 난 불편해. 네가 이렇게 하는 점이 난 속상해. 그리고 그건 느낀 점을 넘어 평가로도 이어졌다. 호주 애들이 맨날 OMG GIRLLL, YOU'RE SO PRETTY TODAY! 이런 말들 나는 못하겠더라. 내 눈에는 예쁘지 않은데 어떻게 예쁘다고 말이 나오지?


그렇지만 철이 들고 사회성이 생기기는 한 건가, 대학생이 되고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상처받기도, 주기도 싫어.


바보는 아니라 그런가, 여러 번 직설적이고 솔직한 말들로 상처를 받아 보니 상처받기 싫어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점점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으며 솔직하게 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진실된 장점과 피드백을 섞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저  "너 오늘 완전 예쁘다, 별로다"라는 (내 기준) 무성의한 말보다는 "너 오늘 입은 스타일 너랑 잘 어울린다. 넌 몸매가 좋으니까 이런 옷이 네 장점을 살려 주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비판적인 사람의 말이 불편했다면 "내가 감정에 사로잡혀 객관적으로 내 상황을 보지 못할 때 너의 말이 상황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상처가 돼." 할 말을 못해서 주변인들에게 마음을 다치고 손해를 보고 온 친구가 답답할 때 "너의 따뜻한 성격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될 때가 있지만 네 자신을 지키는 데에는  실패한 것 같아."라든가... 이것도 상처가 될 수 있나? 너무 직설적인가? 


이런 방법은 내가 약 5년 간 리테일에서 알바를 하면서 정말 다양한 손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습득하게 된 기술 같다.


그런데 이것도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야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대답하기 싫어.


너무 스트레스받고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땐 이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힘드니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날카로운 말이 나올 것 같으면 대화를 멈춰 버리게 되었다. 와 같은 상황에서 그냥 말을 돌려 버리게 된 것이다. 답답한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고쳐 보려고 노력하는 거 어때? 했다가 반복되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을 피해 버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문제가 없었다. 내 주위 사람들 대부분은 힘든 점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지, 피드백해 줄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코로나 락다운과 대학생이라는 점이 겹치다 보니까 대화를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 자체를 잘 안 만나는 성격이고 대화도 자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치만 문제는 집과 직장에서 발생했다.


나는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많아 지금 누구와 고심해서 대화를 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가족은 언제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대화를 시작한다. 그럼 그냥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 1. 나중에 다시 말해요라고 하거나 (BEST!) 2. 아예 대답 자체를 안 하거나 3. 짜증을 내게 된다. 가족간의 사이가 멀어지고 조금 미안해지지만 그래도 가족이면 관계 회복이 금방 된다.


그런데 회사는 더 큰 문제였다. 주 5일 출근하는 회사기 때문에 (호주에서는 주 5일 사무실 출근하는 사무직 회사가 거의 없다) 나는 매일같이 사무실 직원들을 봐야 했다. 매일 그들과 인사를 해야 했고, 기분이 좋든 안 좋은 톤을 올려야 했고 웃어야 했다. 아니, 웃지 않아도 적어도 찡그려선 안 됐다. 왜 찡그려선 안 됐냐고? 그럼 바로 '무슨 일 있어요? 오늘 아침에 기분이 왜 안 좋아 보여~' 이런 소리를 들었다. 그럼 안 그래도 별로인 컨디션에 그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그게 대답하기 싫어서 1, 2 혹은 3번 방식을 사용하면 이제 매일 가족보다 더 자주 봐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꼬이는 거다. 그들은 당연히 가족만큼 나를 이해해 주지도 않을 거고 나는 심지어 그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상사가 마음에 안 들든,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안 들든, 프로세스가 마음에 안 들든.... 빈말도 못하겠고 대답을 피하지도 못하겠고 긍정하는 말을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한번은 어떤 프로세스 때문에 뭔가가 엎어져서 팀원들이 전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생겼는데 과장님이 오셔서 '매트 씨 괜찮죠?' 이러는데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럼 거기서 뭐라고 해야 하지? 안 괜찮아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네라고 하고 끝났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어른이 되는 건 참 어렵다. 매일 출근하며 힘들고, 기운 없고, 기분 안 좋은데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빠도 좋은 척, 컨디션이 안 좋아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척, 동의하지 않아도 상처 주지 않게 말하는 법,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법 등 어떻게 해야 곁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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