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올해 6학년 알찬 시작을 위해 주요 과목 한 학기과정 예습을 스케줄에 담아보기로 했다. 방학이라고 너무 늦게 일어나면 곧 다가올 새 학년 등교부터 자칫 삐걱거릴 수 있기에 아침기상 시간은 8시 정도로 해두었다. 한 시간 정도 아침식사 시간을 주고 본격적인 하루 일과는 9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국. 수. 사. 과 한 과목당 30분씩 한 시간 반 공부 뒤 30분 쉬고 다시 남은 한 과목 30분을 마저 공부하는 것으로 모닝 공부 계획을 세웠다. 각 과목 예습이 끝나면 1시간 30분 동안은 마음껏 책 읽는 시간으로 채웠다.
“ 와우, 학교에서는 4분의 1이 쉬는 시간인데 집에서는 3분의 1이 쉬는 시간이네? 너무 좋다 엄마”
‘ 음. 역시 이래서 분수를 배워야 하는구먼~ 실 생활에 아주 유용하네’
점심시간 역시 1시간으로, 실행 당사자도 흡족해하는 알찬 봄방학 한정 계획표가 탄생했다.
그동안 엄마표( 엄마는 그저 채점만 해줄 뿐 뭘 가르쳐 줄 수도 없기에) 아니 집표로 수학 공부를 해 오던 그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수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이번 봄방학 바로 직전 2월부터다.
“ 엄마, 너무 신나요. 문제를 빨리 풀고 싶고 엄청 집중되고 막 흥분되고 진짜 재밌어요”
수학 학원 다니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인감? 그 마음 끝까지 유지되어야 할 텐데. 아무튼 집에서 혼자 문제를 푸는 게 외로웠는지 수학 학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동안 6살 여름부터 작년 여름까지 6년 동안 날마다 수학 학습지를 통해 지루한 연산 연습을 하고 한 학기당 개념중심과 심화중심 문제집 두 권으로 학습을 해오던 터라 외로운 집표 수학공부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을 만도 했다. 연산학습지는 물론 고비도 있었지만 힘들어할 땐 홀수 번호만 풀게 하는 등 양을 줄여가면서도 끈을 놓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리 바빴어도 무조건 하루에 할 양은 채우고 나서 잠을 잘 정도로 학습 루틴을 만들어 나갔다. 덕분에 빠르고 정확한 계산이 가능해졌고 8할은 연산이라는 초등수학을 더욱 자신감 있게 대하게 되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니 사실 집에서 차분히 공부할 시간은 넉넉했다. 5학년까지는 영어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면 6학년부터는 수학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여기저기서 '닥수' (닥치고 수학)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으며 이제부터는 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기도 했다.
중등 수학 문제집을 보니 초등수학과는 차원이 달랐다. 계산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꼼꼼하게 외워야 할 개념이 한가득이었다. 선행이 문제가 아니라 정확하고 제대로 된 진짜 수학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바로 집 앞에 있는 수학학원이 있었는데 올 해부터 처음으로 6학년 신입생을 받는다고 해서 주저 없이 등록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중학생부터 다닐 수가 있어서 그레이스에게 앞으로 네가 중학생이 되면 다니게 될 엄청 좋은 수학학원이라고 소개했고 아이는 일 년 전부터 그 학원 간판을 바라보며 자신이 다닐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레이스가 다니기 시작한 수학학원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과정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 들어갈 때 보는 테스트도 레벨을 나누는 테스트가 아닌 현재 얼마나 자기 진도를 꼼꼼하게 다졌는지를 확인하는 한 가지 테스트만 보았다. 선행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셨다. 원장님은 초, 중등까지는 집에서 수학학습을 한 아이들이 대체로 구멍이 없다고 하시며 현재까진 그레이스가 가장 테스트를 잘 봤다고 전화를 주셨다. 어찌 되었든 적은 분량이라도 날마다 집에서 연산 기본기와 개념을 익힌 것이 주효했나 보다.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실력을 위해 이제 학원과 집에서 더욱 촘촘하게 크로스 체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때는 중학교 수학선생님 되는 것이 꿈일 만큼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 그래, 학원은 가고 싶어 할 때 보내는 것이 최고지. 이젠 학원에 가거라.
ㅡ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아무리 빨리 예쁘게 틔운 싹이 보고 싶다 해도
뿌리가 튼튼한 게 먼저다.
보이는 위쪽보다 보이지 않는 아래쪽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손웅정 ) ㅡ
오늘은 즐거운 수학 학원에 가는 날.
“ 엄마, 백분율로 따졌을 때 숙제 중 2.5%를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겠지요?”
수학과 안 친한 찐 문과인 나는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수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이과형 아이가 낯설다.
“뭐, 음... 그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닐까?”
내 나이도 가물가물 할 때가 있는데 갑자기 훅 들어오는 숫자가 빨리 가늠이 안되어 서둘러 얼버무리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그래 이제 엄마표 수학에서 벗어났으니 모처럼 오늘은 찐 엄마표 요리를 해주겠어. 점심은 그레이스가 가장 좋아하는 닭봉 튀김으로 정했다. 얼른 마트에 가서 닭봉을 사 왔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마침 유통기한이 살짝 지난 우유가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둔 내 게으름을 칭찬하며 뽀얀 우유에 닭봉을 재워 잡내를 제거했다. 후추를 뿌리고 감자전분을 묻혀 기름에 튀겨내고 간장에 꿀을 넣은 소스를 묻히면 끝. 연신 맛있어를 외치며 먹어주는 아이와 수북이 쌓여가는 발골된 귀여운 뼈들을 보며 내심 오늘은 엄마노릇 잘한 것 같은 뿌듯함이 몰려왔다.
경쾌한 뒷모습을 보이며 그레이스는 집 앞 수학학원으로 출발했다.
주방엔 자기 할 일을 다 마치고 목욕재계를 기다리는 기름기 잔뜩 먹은 그릇들이 보인다. 설거지하는 내 뒷모습도 경쾌하길 바라며 앞치마를 걸치고 고무장갑을 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