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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Apr 03. 2024

각자의 삶을 응원해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박우란


3월 나를 바라보게 한 책은 박우란 작가님의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이다. 제목만 보고 단순히 딸과 엄마의 관계만을 생각하면 안 된다. 딸과 엄마의 관계는 시작일 뿐 마지막 장까지 꽉 차게 읽고 나면 엄마와 자녀, 아내와 남편, 부부와 자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중심은 엄마이자 딸인 여자의 입장과 시각, 관점, 감정이다.

애도되지 않은 감정은 반드시 돌아온다

                                                                -p.24

현재의 불안정한 정서와 감정은 과거의 결핍과 욕구들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감정들을 과거에 알아차리고 애도하고 보내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 무의식에 남아 현재의 나에게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약간 오싹해진다.


애도되지 않고 돌아온 감정을 알아차리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나를 대하는 자세는 많이 달라진다. 저자는 무의식에 내재된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중 자식, 특히 딸에게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딸인 여자아이는 대체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여겨 타인의 감정을 충족시키고 만족시키려 하기에 엄마의 감정을 재빨리 알아채고 엄마의 눈치를 살피지만, 반면 남자아이는 타인보다 내가 먼저 충족되고 만족이 되어야 해서 엄마를 자신의 일부로 여겨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부분이 성인 여자와 성인 남자에게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근본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타인을 인식하고 의식하는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엄마는 자연스레 딸에게 과거에서 비롯된 자신의 결핍된 욕구와 감정을 토로하고 채우려 한다. 엄마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딸이었기에 그때 못 받았던 사랑과 누군가를 위해 강요당했던 희생으로 누리지 못한 것들을 딸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는 무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게 된다. 엄마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딸을 자신의 생각대로 통제하고 더 나아가 억압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게 소위 요즘 말하는 가스라이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엄마의 딸인 나는 아들만 있다. 딸과 아들의 기본적인 성향이 다르므로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랐듯이 내 아이도 내 감정을 먹고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아이의 무의식에 심어 준 감정들은 무엇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또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내뱉은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들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 같고, 그것들이 아이의 내면 밑바닥에 가라앉아 문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육아를 하면서 아이를 무조건 사랑하고 믿어주고 존중하겠다는 생각은 해가 지날수록 기승전잔소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진양조부터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까지 모든 장단을 두루 섭렵하며 목소리도 다채롭게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아이에게 내 감정을 털어냈다.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면 시원해야 하는데 마음은 더 답답하고 죄책감에 미안해했다. 엄마가 과하게 혼내고 잔소리하는 날은 아이도 기분이 나쁘고 억울하겠지만  어린아이에게 절대자는 엄마이기에 묵묵히 듣고 따라야 하는 때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내 아이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으면 나를 더 이해해 주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엄마인 나도 내 아이를 나와는 다른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인간이면서 여자인 내 감정을 더 많이 받아주고 따라주는 아이가 내 옆에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나이고 내 아이는 내 아이이다.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서로 다른 인격체여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면 된다

-----엄마가 헌신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진정으로 욕망하고 집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p.77


저자는 엄마인 내가 진정 원하는 내 삶을 고민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모습이 진까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체화한다는 것이다. 딸은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다가 결혼해서 아이에게 모든 걸 다 주면서 헌신한다. 대부분의 딸들이 결혼 전은 엄마를 위한 삶, 결혼 후에는 아이를 위한 삶을 사는 동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없다. 그러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부모에게서 엄마에게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할 때가 오면 허탈감과 허망함에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엄마가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엄마의 목표가 아이가 아닌 엄마 자신의 삶을 향해 있을 때 아이도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게 된다.

무엇보다 사색하고 사유하는 엄마여야 합니다. 엄마 자신의 욕구와 욕망, 결핍과 상처를 인식하고 애도할 수 있을 때, 그동안 발화되지 않았던 뜨거운 모성을 만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p.125

어떠한 과정을 통해 애도되지 않은 감정을 알아차렸다면 과거의 기억 속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진실과 그 진실이 만들어 낸 환상을 구별하고 진리를 찾는 방향으로 현재 나의 감정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기억 속 감정을 정확히 받아들이고 잘 보내주는 애도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후에야 엄마와 딸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엄마는 엄마면 되고, 아빠는 아빠면 된다

---좋은 부모란 자녀에게 곁은 충분히 내주지만 자녀에 관한 한 무능한 부모다.---              -p.225

부모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아이에게 끝없이 마음을, 곁을 내주지만 '네 삶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라는 무능한 자세가 아이를 생동감 있게 살도록 만들 것입니다.        -p.229

마마보이, 파파걸 같은 말이 나오는 이유는 엄마, 아빠가 자신들의 마음속 아이를 계속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존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상실과 애도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 순간의 내 모습,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끊임없이 잃어 갑니다. 그 잃어 가는 것들에 대한 적절한 애도는 나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지요. 잘 잃어 가는 것이 나를 잘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p.234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다. 집집마다 남편과 아내로서의 위치,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각 가정의 상황에 맞게 부모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할 때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잘 잡고 성장한다. 아이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집착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해진 위치에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려면 부모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자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나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결국 혼자이기에 홀로서기해야 한다.

홀로 선다는 것은 물리적인 독립이나 경제적 자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개인이 된다는 의미이지요.            -p.262

홀로서기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관계를 맺고 끝는 것도 잘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혼자지만 혼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좀 더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홀로서기하기 위해 엄마이기 이전 한 인간으로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사색과 사유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를 따라 아이도 자신의 삶과 욕망에 대한 사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좋은 경험과 좋은 기억, 감정만 가지고 살아나갈 수는 없다. 수많은 일들 속에서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나쁜 기억과 감정을 남기는 일은 수없이 많다. 단지 그런 일들이 생길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바르게 잘 읽어주고 위로해 준다면 미래까지 그 감정들이 따라다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우리 몸과 의식에 기억되어 있는 상처나 결핍을 같이 갖고 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생긴 상처가 없던 것처럼 말끔히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진 의미를 다시 이해하고 나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시키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여 내 삶과 조응시키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치유가 아닌 회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여자이기에 엄마이기에 딸이기에 겪는 일과 그로 인한 상처로 자신을 잃어버린 삶에서 이제는 방향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한 인간으로서 잃어버렸던 자신과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하자. 그래야 엄마가 딸이, 또 그 딸의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나를 찾기 위해 지나간 내 시간을 재해석하고 소중하게 상징화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제시한 내 안의 것들을 써 내려가는 '자기 글쓰기'에 공감하며, 꾸준히 글을 쓰기로 다짐해 본다. 번데기에서 나비가 된다고 완전해지지는 않겠지만 번데기 안에서 나를 찾아가다 보면 알고 있던 '나'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테니 그것만으로도 삶의 기쁨은 충분하고 내 삶은 자유와 행복으로 충만해질 거라 믿는다. 언젠가 나비가 될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미지 출처: pixabay




*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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