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실은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첫째, 조롱당한다. 둘째, 심한 반대에 부딪친다. 셋째, 분명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 쇼펜하우어
"언제 잘 거야?"
"조금만 더 하고"
"오늘도 먼저 자?"
"응 피곤할 텐데 어서 자"
"같이 자자. 나 요즘 맨날 혼자 자잖아"
"애야? 나 오늘 이거 끝내야 해"
"자기 나랑 얘기 좀 해"
"무슨 얘기?"
"자기 요즘 그거 하느라 맨날 늦게 자고, 그래서 나랑 애랑 둘이 자고, 자긴 잠 부족해서 다음 날 아침에 예민해져서 나랑 애한테 날카롭게 굴고, 언제까지 이래야 해? 나는 더는 계속 이렇게는 못 지내!"
쳇, 내가 뭘 또 얼마나 예민하게 굴었다고.. 늦은 시각에 밖에 나가 싸돌아 다니길 했어 아님 술을 마시길 해. 글 좀 써보겠다는데 뭔 말이 저리 많나? 할 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잠 줄여가며 하는 걸.
"내가 예민해졌다고? 글쎄.. 그리고 애랑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 더 커서 사춘기 오면 아빠 엄마랑 같이 자자고 해도 안 자, 기회 있을 때 애랑 자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책도 같이 보고, 맨날 엄마랑만 하던 거 아빠랑도 하면 좋잖아. 그리고 내가 써보니까 알겠어, 왜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하는지. 생각을 하게 하니까, 쓰려면 생각을 안 하고는 못 하거든. 애한테만 글쓰기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엄마도 글 쓰면 애도 보는 게 있을 테니 낫지 않을까? 또, 내가 뭐 매일 이래? 안 쓰던 사람이 쓰려니 시간이 걸리는 거라 그래. 적당히 하고 잘 테니까 먼저 자"
두 달 가까이 그러려니 해주던 남편이 그날따라 보챘다. 안 하던 걸 한다고 한 쪽 방에 박혀 늦은 시각까지 노트북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그럴 리가), 옆에 두고도 홀아비처럼 허벅지만 벅벅 긁고 있어야 하는 신세가 한스러웠던 건지, 뻔히 질 걸 알면서 싸움을 걸었다.
"자기 안고 자고 싶다고!"
"머리만 닿으면 3분 안에 레드 썬이면서 무슨 의미가 있어? 베개 안고 자면 되잖아"
"베개랑 자기랑 같아? 느낌이 다르잖아."
"그럼 오둥이 안고 자, 아님 애 안고 자든가"
"싫어, 오늘은 꼭 자기 안고 잘 거야. 그만하고 자자~"
웬만한 초등생 정도의 오둥이. 전학으로 힘들까 봐 아이에게 주라며 학부모님께서 주신 선물. 우리 집 깍두기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 아직은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조금씩 욕심이 난다. 글을 쓰고 발행하는 매번, 마음에 차지 않아 어디에 내놓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의 단톡방에 턱턱 올라오는 링크는 부러울 따름. 쓰는 일이 무서울 만큼 싫었던 어린 시절은 지나갔지만 살다 보니 써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엄마가 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더. 각종 서식은 물론 아이의 선생님과 주고받는 간단한 메시지조차 내겐 글쓰기 숙제 같아 보내기 전에 읽고 다시 읽고 보내고도 또 읽는다. 이런 이유들로 만난 글쓰기 수업은 듣기만 하면 기술을 좀 배울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김칫국이었다. 많이 쓰는 게 먼저라는데 관성이 강한 나의 기질은 이토록 현생에 집중하느라 겨우 30편에 가까워지고 있는 처지니 한 편 한 편이 견우와 직녀의 만남 같다.
'그럼에도 쓰련다. 새끼 거북이의 속도라도 꾸준하면 늘 테니. 써보자. 쓸 거다.'
이런 모습이었을까. 언젠가부터는 노트북 앞에 있는 날이면 자기 전 몇 번 와서 문을 열어 보고, 빼꼼히 쳐다보고, 슬며시 물을 한 잔 가져다주고는 조용히 안방으로 가는 남편. 벽 하나는 넘은 건가. 부러 마음먹기 전에는 키보드 위에 올라간 손이 오래 놀지 않지만, 한 단계 자라 보자 다짐한다. 멱살캐리해주시는 작가님들도 있으니.
" 무거운 물체를 띄운다? 한 번만 더 그런 말 하면 지옥에 간다 진짜로!"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제작한 라이트 형제가 그들의 아버지 밀턴 라이트에게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만든 비행기로 38분 3초 동안 실험 비행하는 모습을 아버지가 목격하게 했고, 82세의 아버지를 태우고 7분간 비행하기도 했다. 이때 밀턴 라이트는 107m 상공에 이르자 "높이, 오빌, 더 높이!"라고 외쳤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