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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30. 2024

전남친이 연애한다

분하다. 예뻐?

나의 20대 끝을 함께 보낸 7살 연상 남자친구.


내가 좋아해서 플러팅하고 고백하고 사귀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연애보다는 사업을 준비 중이었지만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얼떨떨해하면서도 나를 받아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너무 기뻤다.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그 사람이 좋다는 건 무조건 나도 좋아하려 했고, 싫다는 건 절대 안 했다.


사업이 잘 안 풀리고 여기저기 빚이 생긴 그 사람은 나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돈을 빌리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고 새벽같이 나가 생수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치킨 한 마리도 사 먹기 힘들어 늘 내가 사야 했고 가끔은 생필품을 몰래 채워놓기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고 힘든 상황에 빠졌어도 서로 농담을 던져가며 매일 웃었다. 나의 부족함과 그 사람의 부족함으로 몇 번이나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해도 그 2년간 즐거웠다.

안 좋은 일이 많았지만 좋은 기억도 매우 많았다.


그럼에도 서로의 환경 속에 서서히 마음이 죽었다.


늘 웃으며 반짝였던 우리는 거기에 없었다.

지치고 낡았으며 뾰족한 말만이 남았다.


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게 될 것 같아서 무서웠다.

두 번 다시 반짝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무서웠다.


원래의 나를,

원래의 그 사람을,

되찾고 싶었다.


어느 정도 그 사람의 환경이 나아질 때즈음 이별했다.

나를 잡아줬지만 끝내 놓았다.

그저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했다.


그렇게 약 5년이 지난 지금.

오랜만에 마주한 그 사람은 즐거워 보였다.

내가 좋아하던 모습 그대로 반짝였다.

서로 반가워하며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전남친이 연애한다!


제일 처음 퍼뜩 든 생각은 "분하다"였다.

나보다 빨리 새로운 짝지를 만나다니!

물론 나도 중간중간 썸남은 있었지만 정착하지 못했는데!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예쁜가?"

사진을 보니 예뻤다.

나와는 엄두도 못 냈던 해외여행을 그 분과 다녀온 듯했다.

그 외에도 아기자기한 데이트, 예쁜 사진들을 찍었더라.


다행이었다.

반짝이는 일상이 생긴 것 같아 보기 좋았다.

괜찮은 척 웃어보이던 얼굴 대신 정말로 웃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내가 너무 사랑했던 사람아.

앞으로는 늘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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