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나 Sep 04. 2024

이직에 성공했습니다만?

자, 이제 시작이야. 고생길 시작.

1. 이직(移職)

:고용주와 피고용자 간 고용관계가 끝나고 피고용자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2. 이직(離職)

:근로계약의 종료를 말한다. 사직이나 해고와 같은 퇴사, 근로자 본인의 사망을 포함한다.




나의 이력서는 꽤 화려한 편이다.

여러 가지 사유-사람과의 관계, 성희롱, 계약, 적성, 건강 등-로 이직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20대에는 경력을 쌓기보다 경험을 위주로 직장을 다녔고, 면접 프리패스상-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라 이직이 꽤 수월한 편이었다.

전공은 호텔경영과였지만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거칠고 뾰족해지는 나를 느끼면서 이직을 감행했다.

그 이후에는 주로 사무직원으로 근무하며 관리행정에 대해 배웠지만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지루하고 지루한 나날들이었다.


30대가 되고는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그중 하나가 면접제의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면접만이라도 보게 해 주면 좋을 텐데 그마저도 제의가 없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잦은 이직과 30대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주된 이유였겠지...

이때부터는 재미와 경험보다는 경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나의 직장을 앗아가고 나는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이직이 지겨웠다.

정착해서 오래 있고 싶은데 그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니. 20대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 일상이 숨이 막혔다. 익숙해지면 그만둬야 하는 계약직도 지겨웠다.


그런 나를 보며 제일 마음 졸이며 내 눈치를 본 것은 단연코 엄마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살얼음 위를 살아갔다. 그러다 엄마의 직장도 위태롭게 되어 우리는 갑자기 가난해졌다. 돈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이. 나날이 작아져가는 엄마를 보며 결심했다.


빚을 내서라도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야겠다고.


그렇게 나는 여성인력센터에서 마케팅을 배우고, 그곳에서의 추천으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 국비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대출을 받아 학원을 수강했다. 7개월가량의 기간이 지나면서 포토샵과 일러스트, 인디자인을 배우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보면서 디자인 관련 지식을 쌓았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미혼여성이며 중고신입인 나는 여러 가지로 타협할 것이 많았다. 포트폴리오도 경험도 부족했기에 나를 불러주는 곳이 딱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직에 성공했다.


번쩍번쩍한 건물은 아니지만 교통이 편리하고

연차사용이 눈치 보여도 9-6시, 주 5일 근무에

식대는 주지 않지만 일만 잘하면 뭘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런 회사에 취직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운영을 해서 튼튼한 회사다. 부산에서는 같은 업종 중에서도 알아주는 기업이라고 했다. 비록 나의 주머니가 불룩해지진 않지만, 그래도 채워지는 것이 어딘지. 감사할 따름이다.


작고 소중한 나의 보금자리.

이곳에서 조금씩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자, 이제 시작이야.

고생길 시작.


작가의 이전글 전남친이 연애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