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숫자 만큼 돌아본 유럽 62개 도시 산책
1. 아테네(12년 4월, 24년 5월)
2012년 4월 인도의 뭄바이에 근무하면서 한국에서 정기 휴가를 보내고 뭄바이로 복귀하면서 아테네를 여행했다.
아테네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X95번 공항버스를 타고 신타그마 광장까지 간 뒤 신타그마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크라운 프라자 호텔로 이동했다. 이 호텔은 홀리데이인, 인터콘티넨탈 호텔 등과 제휴의 Priority club 호텔이라서 그동안 모아 놓은 마일리지로 이번 여행에 무료로 사용했다.
아테네는 일반 버스, 트램, 지하철, 시티투어 버스, 택시 등 비교적 편리하고, 저렴한 교통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중요한 명소들이 대부분 도보권 안에 있어서, 도보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유럽 대도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아테네 시내에서도 운영하고 있어서 도보로 걷다가 지칠 때 이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해서 아테네 명소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18유로를 내고 티켓을 사면 24시간 동안 자유로이 타고 내릴 수 있고, 영어를 포함한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안내 방송도 이어폰을 꽂고 들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4일짜리 통합 입장권을 구입해서 아크로폴리스, 제우스 신전, 고대 아고라 등 관광 명소를 모두 이용했다. 단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입장료는 별도였다.
12년 4월의 그리스는 이미 서머 타임이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오후 8시가 넘도록 느긋하게 도보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한 시간이 오후 4시라서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도 5시간 이상이 남아서 도보로 아테네 시내 중에서 아테네 시내 전망이 좋은 3곳 언덕인 리카비토스 언덕, 아레오스 파고스 언덕, 필로파포스 언덕을 모두 올라가 보면서 먼저 아테네 시내를 큰 틀에서 바라보았다.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리카비토스 언덕은 북동 측 콜로나키 지역에 위치하고, 아레오 파고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입구 남서 측 바로 근처에, 필로파포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남서 측에 위치했다. 리카비토스 언덕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시내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고, 아레오스 파고스 언덕은 고대 아고라, 로만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입구 측 전망을 볼 수 있었으며, 필로파포스 언덕은 아크로폴리스 전체를 가장 가까이서 내려다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 남부 해안까지 전망할 수 있었다.
화창하고 청명한 그리스의 맑은 하늘 아래 아름다운 석양빛에 반사되어 우뚝 솟아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을 직접 보는 순간 먼 여정의 노고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플라카 거리를 들렀다. 플라카 거리는 반들반들 닳은 돌로 포장된 좁은 길을 따라 수많은 선물 가게, 귀금속, 기념품 가게, 장신구, 공예품 가게들과 갤러리들이 늘어서 있어서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노천카페와 음식점들에서 한가로이 대화를 즐기고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후예 아테네 시민들의 여유도 느껴졌다.
아테네에서의 첫날은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쁨을 간직한 채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여행 둘째 날은 이른 아침에 호텔에서 도보로 신타그마 쪽으로 이동하였다. 걸어가다가 잠시 샛길로 빠져서 근대 올림픽 경기장 쪽에 도착하였다. 아테네 중심인 신타그마 광장 뒤편에 있는 근대 올림픽 경기장은 플라카에서 좀 떨어진 리오포로스 올가스 거리에서 바실리스 콘스탄티누스 거리로 빠지는 막다른 곳에 있었다.
현재의 경기장은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알렉산드리아의 부호 ‘아베로프’의 후원을 힘입어 고대경기장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된 것이다. 스타디움 앞에 그의 동상이 서 있었다. 좌석은 대리석으로 50,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트랙이 요즈음 것들과 달리 말굽형으로 되어 있었다.
근대 올림픽 경기장을 둘러보고, 아테네 도심에 위치한 국립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테네 국립정원의 규모는 아주 큰 편은 아니었으나 도심에 아름다운 숲속의 산책로와 휴게 공간을 잘 가꾸어 놓았다.
아테네 정원이나 주택가, 그리고 도심의 가로수 중에 오렌지 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바닥에도 수북이 그냥 떨어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립정원 안에 자피온을 거쳐 제우스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16개 기둥이 남아 있었는데 강풍으로 넘어져 그나마 15개만 남아 있었고, 넘어진 한 개의 기둥은 이 위대한 신전의 기둥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제우스 신전의 입구인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을 거쳐 드디어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에 도착하였다. 사진으로만 보아 왔던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문화유산 1호답게 당당하고 웅장하였다. 물론 몇 년째 복원 작업을 하느라 크레인과 비계에 가려져 있어서 원래 남아 있는 모습도 완전히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공공건물의 외관에 모델이 될 정도의 완벽하고 균형미를 갖춘 아름다운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건축을 전공한 엔지니어로서 아테네 여행의 주목적이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아크로폴리스에서 2시간 이상을 머물러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를 빠져나와 고대 아고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몇 시간째 계속 걷고, 또 아크로폴리스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더니 체력이 급속히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다. 고대 아고라에서 옛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아고라를 뒤로하고 허기와 고갈된 체력을 만회하기 위해 플라카 거리에서 도넛과 오렌지 주스를 사서 아테네 시티투어 버스에 올랐다. 아테네 시내의 주요 명소는 가까운 거리에 밀집해 있어서 어느 곳이든 걸어서 도착할 수 있으나 하루 종일 걸을 수가 없으므로 편안히 시티투어 버스 위에서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시티투어 버스는 시내를 이동하면서 둘러볼 수도 있고, 들르고 싶은 곳에 하차하여 둘러본 뒤 다음에 오는 다른 버스에 탑승하여 다시 이동하면 되므로 매우 편리했다.
오후에는 다시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기원전 20세기~5세기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옛 그리스의 유적들을 눈으로 보는 순간, 이집트 피라미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때의 느낌 이상으로 내심 충격을 받았다. 대만의 고궁 박물관에서 보았던 중국의 각종 도기, 자기류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종류의 도기류와 정교한 세공품들, 그리고 아름다운 조각상들은 모양과 무늬도 너무 다양하고 아름다워서 마치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서 역시 3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니 너무 다리가 아파서 남은 시간은 다시 시티투어 버스에 올라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신타그마 광장으로 돌아왔다. 신타그마 광장에는 아테네 근교 해변으로 가는 트램 종착역이 있어서 편도 4유로 요금을 내고 아테네 근교의 지중해 해변을 다녀왔다. 트램을 타고 30분 정도 시내를 빠져나가니 곧바로 아테네 근교의 지중해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왕복 2시간의 트램 여행을 끝으로 둘째 날 일정을 마쳤다.
아테네 셋째 날은 새벽부터 지하철을 이용하여 하루 일정을 시작하였다. 아테네 지하철은 3개 노선으로 매우 간단해서, 편하게 이용할 수가 있었다. 특히 아테네는 버스와 지하철을 1일 동안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4유로짜리 통합 티켓이 있어서 매우 편리하였다. 3일째 날은 거의 복습하듯이 아테네 시내를 돌아다녔다. 버스, 지하철, 트램, 택시 등 대중교통도 모두 이용해 보았고, 시티투어 버스로 다시 한 바퀴 정리하면서 3일간의 아테네 자유여행을 마무리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아테네공항에 도착 후 근무지인 인도 뭄바이로 복귀했다.
2012년 아테네 여행 이후 2024년 5월에는 아테네, 코린트, 산토리니, 메테오라 등을 포함하는 두 번째 그리스 여행을 하였다. 2012년 아테네 여행 때는 혼자였지만 2024년에는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서 마음이 편하고 느긋한 마음이 들었다.
인천을 출발해서 9시간 30분 동안의 긴 비행 끝에 아부다비에 도착하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UAE 두바이에 근무하면서 자주 들렀던 아부다비공항은 오랜만에 반가웠고,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로, 환승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다시 비행기에 탑승해 5시간을 날아 드디어 두 번째로 아테네에 도착했다.
2024년 5월 9일 아침, 아테네공항을 빠져나와 첫 번째 여행지인 수니온곶으로 이동하였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이동 후, 에게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수니온곶에 도착하였다. 먼저 수니온곶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으로 올라갔다. 신전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길이었지만,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발걸음이 가벼웠다. 신전 앞에 서자,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포세이돈 신전의 위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대리석 기둥들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고, 에게해의 푸른 물결과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신전을 둘러보고 내려와서 수니온곶의 또 다른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 다시 반대편으로 멀리 보이는 포세이돈 신전과 에게해 바다가 어우러진 경관을 감상하였다. 에게해의 맑고 푸른 바닷물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수니온곶에서의 특별한 경험은 그리스 여행의 첫날을 완벽하게 장식해 주었다.
포세이돈 신전을 뒤로하고 다시 아테네로 돌아왔다. 아테네에 도착해 신타그마 광장을 산책한 뒤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위병 교대식을 감상했다.
근위병들의 독특한 의상과 동작이 약간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들의 매우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발을 높이 들어 올리면서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임무를 교대하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예술 공연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교대식이 벌어지는 국회의사당 벽면에 새겨진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넘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웠다.”는 문구는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극동의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해서 목숨을 잃은 그리스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희생하신 그리스 참전용사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참배를 드렸다.
아테네 국회의사당은 19세기 중반에 건축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거대한 기둥들과 정교한 조각들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을 계승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에 펼쳐진 신타그마 광장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토론하고 시위를 벌이는 장소로, 그리스 민주주의의 정신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아테네의 현지 식당에서 저녁 식사로 수블라키와 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그리스 와인을 마신 뒤 아테네 호텔에 체크인을 마치고, 아테네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