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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닌 Oct 25. 2023

기승전 고양이

사서교사 해닌의 이야기

 

 강화도에서 3년을 살았다. 강화도는 참으로 미묘한 섬인데, 시골이라기엔 솔직히 스타벅스도 있고 다이소도 있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곳이다. 서울 근교의 관광지라 있을 건 다 있는데 시골답게 없을 건 또 없는 곳이라 이를 일컬어 '관광시골'이라 부르고는 했다. 


 내가 처음 근무하게 된 학교는 읍내에 위치한 남자고등학교였는데 하필이면 신규 발령과 동시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우당탕탕 적응기를 찍었던 것 같다. 시커멓고 커다란 남학생들은 얼굴은 순했으나 마스크를 내리면 수염이 숭숭 나있어 소소한 충격을 주곤 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교사가 될 생각을 해본 적 없던 사람이라 교단에 서 있는 자체가 영 어색했다. 학생들에게 말을 편히 놓기 위해서 몰래 뒤에서 연습할 정도였다(그리고 이제는 너무 적응해버린 탓에 높임말이 잘 안 나와서 다시 연습 중이다.) 


 사실 내가 사서교사가 된 데에는 결정적인 한마디가 있었다.


 “학교도서관은 완전히 나만의 왕국이에요. 여기와 달리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학교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동료의 극찬이었다. 구구절절하여 생략하지만 그럴만한 일들이 있었고, 그리하여 나름 열심히 임했던 공무원을 고작 1년 만에 때려치게 되었다.


 교실 몇 칸짜리 공간은 공공도서관에 비하면 크지 않았지만 학교 안에서는 나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심지어 별실이라는 건 보통 딱 한 명만 가질 수 있는 공간 아닌가. 교장선생님 급의 공간권력이라니 짜릿했다. 안내문에 땡땡 도서관장이라 쓰며 흐뭇해하는 버릇은 이때 생긴 듯 싶다.


 이 공간권력을 어떻게 쓰고 있냐면 한마디로 기승전 고양이다. 수서할 때마다 고양이 책을 꼭 끼워 넣고, 가을에는 천고묘소(하늘은 높고 고양이는 귀엽다) 이벤트를 열었다. 고양이 상품을 나눠주고 도서관 구석구석에 고양이 장식을 뒀다. 즉, 나는 나만의 왕국을 고양이로 가득 채웠다.



 놀랍게도 나는 선생이 될 생각이 없던 사람인 것만큼이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고양이를 데려온 것 자체가 강화도의 낯선 학교생활만큼이나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강화도 유기동물센터 출신인 우리 첫째 공주님의 이름은 퐁당이로 늘씬한 턱시도 고양이다. 마치 우유 그릇에 퐁당한 것 같은 모양새라 H쌤이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 순간부터 퐁당이는 나에게 다가와 내새끼가 된 것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해보자면, 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사람에게 고양이란 길가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야생동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사회성을 갖춘 intp 인간이므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앞에서는 열심히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척 했다. 고양이를 두 마리나 키우는 전 직장 동기 언니를 만나서도 부지런히 맞장구를 쳤는데 와중에 궁금해서 물어는 보았다.     


 "언니는 어쩌다 고양이를 키우게 됐어요?"


 "사람이 하나의 존재를 온전히 책임져보는 일을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고양이를 키워보면 알게 돼. 그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야."     

 

 원래도 좋아하는 언니였지만 너무 멋있었다. 얼마나 멋졌냐면 그 뒤로 저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 정도였다. 몇날 며칠을... 그러다가 뇌가 오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고양이 한 마리 정도라면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 


 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해맑은 뇌의 발상이었지만 기어코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로 발전하고 말았다.     


 고양이 양육 관련 책을 읽고 수의사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다. 혹시나 해서 알러지 검사도 받았다. 유기동물 입양 어플인 포인핸드도 매일 정독했다. 이쯤 되니 고양이를 어서 빨리 데려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태가 됐다. 결국 관광시골의 유일한 유기동물센터로 달려가기에 이르렀고...


 그리고 알게 되었다.

 

 고양이는 어마어마하게 귀엽다는걸.



 퐁당이와 눈을 마주친 순간에 알게 된 진실이었으며 이런 게 바로 첫눈에 반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기도 했다(이제 세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귀여운 것들이 하나같이 다 고양이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쓰면서 느낀 건데 나는 정말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사실 그게 맞다. 


 나는 자타공인 칼퇴전문가(혹은 칼퇴요정)을 맡고 있으며, 분리불안 증세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흔한 집사 중 하나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학교 이야기를 쓴 이유는 나름대로 공감적인 글쓰기를 훈련하고 싶어서였다. 현실적으로 이 글의 독자는 연수 참여 선생님이 전부일 텐데 고양이 이야기보다는 학교 이야기에 더 쉽게 공감하지 않을까 했던 얕은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미 실패한 것 같으니 솔직하게 둘째 고양이 이야기나 해보겠다. 보통 고양이를 합사하기 위해서는 아가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을 추천하는데, 기존에 있던 고양이 입장에서 자신의 영역에 받아들이기에 그나마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둘째 치치는 올해로 6살 난 고양이다. 어쩌다 이런 큰(실제로는 전혀 크지 않고 몹시 귀여운) 고양이를 데려오게 됐냐면 여기에 또 기막힌 사연이 있다.  

    

 치치에게는 구전설화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홍은동 불주먹이었던 까만 고양이 치치... 그는 인간에게 정을 주지 않는 차가운 9kg 대장고양이었는데...'      


 하지만 자기 고양이에게는 따뜻했던 스윗 치치는 겨울에는 따뜻한 쉼터를 양보하고 귀한 식량도 나눠줄 줄 아는 고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고양이 루나를 잃게 되고, 씩씩했던 치치는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큰 스트레스로 급기야 고양이 불치병인 복막염에 걸리게 되는데.... 


 이를 보다 못한 선량한 시민 한 분이 치치를 병원으로 데려가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앓았는지 몸무게가 고작 3.9키로였다고 한다. 구조하시면서도 혹시 실내 생활에 적응 못 할까 봐 걱정을 하셨다는데 이게 웬걸. 치치는 엄청난 애교쟁이였다. 구조자님께서 지극정성으로 돌보신 끝에 치치는 건강을 되찾았고 이제는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다. 


 어느 행복한 방학식 다음 날. 뜬금없이 평소에는 잘 들어가지 않던 고양이 커뮤니티 카페에 접속했었다. 퐁당이가 벌써 두 살이 되어가니 둘째를 데려오려면 마지막 기회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그냥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전날 치치의 가족을 구하는 글이 올라온 것은 틀림없이 묘연이었을 것이다.



 이 감동적인 치치의 이야기를 듣고서 남고생들은 '그거 구전설화 아니에요?', '선생님이 지어내신 거 아니에요?' 하는 반응이나 보였으니 더 완벽한 나만의 왕국을 꾸리기 위해 옆학교로 이동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물론 악의없이 농담으로 한 말이며 착하고 정겨운 학생들이다.)      


 이번 학교는 매점 사장님과 고양이 동아리 학생들이 돌봐주는 학교 고양이가 있는 곳이다. 그동안 인천 본토에 있는 시내 학교로 나갈 것인가 강화도에 좀 더 머무를 것인가 굉장히 많이 고민해봤는데, 아직까지는 이 관광시골이 내가 꿈꾸는 왕국을 꾸리기에 적합한 것 같다. 



 나에게 고양이와 함께한 나날은 마치 여행 같았다. 비록 고양이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이 여행처럼 새롭기 마련이니까. 각자의 행복이란 제각기 모양새가 다른 법이니 제법 괜찮지 않은가.     


 먼저 배워서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선생이라면,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은 결국 기승전 고양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각자의 결대로 저마다의 왕국을 꾸리는 삶. 내가 그랬듯 너희도 그럴 수 있기를. 이윽고 아주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승전 고양이지만 선생이 되려고 노력 중인 해닌 씀.




- 이 이야기는 인천시교육청 중등 독서교육 역량강화 직무연수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하였던 에세이인데, 흑백 인쇄집에 출력되어 고양이의 귀여움이 살지 않았으므로 이 곳에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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