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 Nov 06. 2023

1 내가 암환자란다

흉선암 진단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그 순간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앞두고 있었고, 욕실로 들어가 평소처럼 노래를 틀었다.

물이라도 튀기면 안 되니까 수건 틈 사이에 폰을 구겨 넣고,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어떤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고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 건강검진센터>


그 짧은 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다. 분명 다음 주쯤이나 우편으로 발송된다고 했었는데,

왜 전화가 온 걸까. 그리고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 좋은 일은 아니구나.

내 몸에 이상이 있구나.


친절하 상담원은 내 폐 앞에 '종괴'가 보인다고 했고, 빠르게 큰 병원에 예약을 잡으셔야 할 것 같다며

급하게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엑스레이와 CT에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마저 머리를 감았고, 헹궈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오갔던 말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머릿속에는 '폐' '종괴'만 남았고, 가까운 대학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가장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예약을 잡았고, 급하게 검진센터에서 영상 CD를 받아 움직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뜻이 있었는지, 그냥 우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그래도 잘 풀렸던 것 같다.

너무도 당황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과를 가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무작정 병원에 전화해 "폐 앞에 종괴가 보인다."라는 말만 반복했고,

종양내과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정확히는 폐 앞에 있는 장기인 흉선이라는 곳의 문제였고, 이는 흉부외과를 가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셨던 종양내과 의사분이 급하게 흉부외과에 협진을 요청하셨고,

간호사분들이 연이어 애써 주신 덕분에 말 그대로 나를 리스트에 '밀어 넣어' 주셨다.


무작정 대기의 대기를 거쳐 급하게 CT를 찍었고, 흉선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살면서 내 몸에 그런 기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흉선의 세포에 발생하는 종양이다. 흉선은 흉골 뒤쪽, 심장 앞쪽에 있는 작은 장기로서 태아기에서 유아기까지는 몸의 면역기능을 담당하다가 성인이 되면 퇴화된다. 이 질환은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불리는 면역기능 이상과도 관계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전신의 근력이 떨어지는 중증 근무력증이다. 또 드물지만 악성인 경우는 흉선암으로 따로 구별한다. 30세 이상의 성인에게 자주 발생하며 남녀 차이는 없고 정확한 원인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흉선종 [thymoma, 胸線腫]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처음으로 든 생각이 '일'이었다. 우리는 참 뼛속까지 노예근성이 있는 것일까.

생사를 오갈지도 모르는 수술 날짜를 잡으면서도 일 생각이 먼저라니 참 구슬펐다.

인수인계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어림잡아 수술 날짜를 정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빨리 수술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인데, 일 때문에 미뤘다니 참 우습다.)


수술을 해서 종양을 떼어낸 후에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과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흉선종 제거 수술을 받지만, 악성 종양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들었다. 하지만, 촉이란 언제나 맞는 법이다. 이건 오랜 기간 내 몸에 쌓인 우주적인 데이터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