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 가발과 단발 가발
나는 가발이 많은 편이었다. 핑*에서 산 긴 가발 두 개와 단발 가발 한 개, 모자 가발, '진'이 사준 일본 가발. 그저 긴 가발 하나와 단발 하나 정도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시행착오 때문에 늘어난 개수로 보인다.
가발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통풍이다. 수제가발이라고 하는 것을 사야 하는데 우리 같은 환자들은 두피와 직접적으로 닿기 때문에 통풍에 심혈을 기울였는지가 중요하다. 또한 그만큼 구멍이 있어서 밖에서 봤을 때 실제 내 두피가 보여서 더욱 자연스럽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발 가발이 가장 편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단발 가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항암 전에 긴 머리였어도 엄청나게 긴 머리를 유지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열심히 긴 머리를 휘날리리라 결심했지만, 정말 착각이었다. 머리가 없을 시기가 겨울이라면 오히려 도움을 받을 테지만, 나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지옥 그 자체였다. 두피에 땀이 난다면 흡수할 수 있거나 가려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럼 말 그대로 또르르르 땀이 흘러내린다.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히지 않고,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렌즈에 눈물이 들어가서 눈이 따가울 지경이랄까. 그래서 정말 심한 여름에는 절대 긴 머리 가발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자연스러운 것도 단발이 훨씬 좋다. 아무래도 구레나룻이 없어지다 보니 머리를 귀로 넘길 수 없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머리를 살짝 귀에 꽂아야 해서 이런 스타일은 긴 머리보다는 짧은 게 더 잘 어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 가발을 빗고, 에센스를 뿌려주고, 건조해줘야 하는 작업은 당연히 짧은 게 좋다. 긴 머리 가발을 베란다에 늘어놓으면 아무래도 밖에서 보면 호러영화가 아닐까 싶다. 또한, 긴 머리 가발은 엉키는 일이 기본이고, 그러면서 많이도 빠지는데... 너무 속상하다. (한 가닥 한 가닥이 얼마 짜린가 말인가!) 그래도 환우 할인이 되는 곳이 있다. 참 고맙더라. 그런데 말하기 어렵다고 인터넷으로만 주문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당당하게 환우 할인을 받도록 권하고 싶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린 죄를 지은 게 아니고, 그냥 아픈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프다. 그 시기가 좀 일찍 찾아왔을 뿐이지.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러니 매장에 가서 가발을 고르는 과정을 불편하다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병원에 있는 가발 업체는 보통 비싼 편이다. 가서 아줌마 스타일로 이상한 가발 고르고, 커트 비용도 어마무시하게 추가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가발을 고르고 내가 쓴 상태로 커트를 받았다. 그러면 아무래도 나에게 잘 어울리는 느낌으로 손질이 되기 때문에 가발인데도 가발인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거 가발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네?"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면 그게 또 꿀맛이랄까.
아직도 기억나는 직원분이 있다. '고객님, 다음에 오실 땐 연장하러 오셔야 해요. 기다릴게요.'
그 말이 아주 오랫동안 생각났다.
물론 특정 브랜드가 아니어도 단골 미용실이 있다면 가발도 커트 가능한지 물어볼 수 있다. 정말 거동이 불편한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치료가 끝나도 머리가 자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몸이 싱싱할 때 가발 샵에 꼭 가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가발을 찾기를 바란다. 평소에 못해본 헤어스타일을 해보는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내가 이렇게 두상이 예쁜지 처음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자 가발은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다. 굉장히 편하게 보이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엉성하고, 쓰고 나면 어색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가발을 커트했더니 가발이 들쑥날쑥 제멋대로 뻗치고, 두피에 닿는 모양새가 편하지 않다. 두피가 숨을 쉴 수 있게 모자를 쓸 거라면 모자만 쓰고, 가발을 쓸 거라면 가발만 쓰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