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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Nov 21. 2023

8 방사선 치료

출발하지 않는 우주선을 타고

흉선종을 제거한 모든 환자들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하는 건 아니다. 수술에서 큰 덩어리는 잘 떼어 냈는데 종양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있거나, 현미경으로 수술한 조직들을 쪼개 보는데 재발률이 높을 것이라는 조직학적 진단이 나온 경우에 방사선 치료를 시행한다. 물론, 당장 수술하기가 어려울 크기라면 방사선 치료를 먼저 진행해 크기를 줄이기도 한다. 그래서 환우들 사이에서는 바로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면 다행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보통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매번 그 시간에 온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시간이 애매한 시간에 걸리면 하루 다 날려버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많이 배려해 주셔서 시간을 앞당기기도 했었다. 나는 택시로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 엄마가 참 속상했었다고 한다. 도로에 버리는 돈도 돈이지만, 본인이 운전을 했다면 좀 달랐을 것 같다며 힘들어하셨던 게 생각난다. 거동이 불편하신 환자 분들은 보통 방사선 치료 받을 때는 근처 병원에서 장기 입원하시면서 셔틀로 왔다 갔다 하셨다고 들었다. 먼 지방에서 올라오셔야 하는 경우에는 숙소를 잡기도 하신다던데, 참 여러모로 추가 비용이 많이 든다. 나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살았지만, 메이저라고 하는 대학 병원들이 집 근처 있는 행운은 모두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방사선 치료는 MRI, CT 촬영 후 설계를 하고 진행한다. 몸에 설계 도면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잘 지워지지 않도록 특수한 펜으로 몸에 그림을 그린다. 물론 그래도 지워지기 때문에 몸을 씻을 때 조심해서 씻어야 한다. 연이어 25회 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흐릿해지면 중간에 다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쯤되면 몸에 왜 그림을 그리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 방사선 치료는 속옷도 입지 않고 벗은 그대로 기계 위에 눕는다. 몸 위에 그려진 설계도면을 기준삼아 기계에 정확히 끼우듯이 진행한다. 정확히 특정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인 건 알지만,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21세기에 상의를 벗고 치료를 받는다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으로 별로다.


감사하게도 정말 젠틀한 방사선사 선생님을 만났다. 사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남자 방사선사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불쾌하지 않도록 정말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하지만 가끔 생각하면 어떻게 그걸 했나 싶을 만큼 상상하기도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종종 나이 좀 지긋하신 분이 해주실 때가 있었는데, 그때 정말 끔찍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경력이 적은 방사선사 선생님도 혹시라도 자신의 손길이 내게 불쾌감을 줄까 봐 조심조심하는 게 느껴졌는데, 경력이 많은 선생님은 다른 의미로 경력이 많으신 건지 참 날 힘들게 했다. 주물럭 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터치가 많았다. 빠르게 시간이 가길 바라고 또 바라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가슴 가리개라도 있으면 좋겠다. 한 마리의 젖 달린 짐승이 되는 것 같아 정말 별로였다.

정말 정신머리를 내려놓지 않으면 그 10분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난 정말 운이 좋았던 게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이 거의 없었다. 심하신 분들은 발톱이 변해서 검은 채로 지내신다고도 들었고(이건 항암 부작용인지 알 수 없음), 피부 발진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거나 열감이 너무 심하다거나 폐 쪽으로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불편하긴 했지만 극심한 고통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버틸만했다. 가슴속에 뜨거운 열감이나 기침, 피부 건조 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아기들이 쓰는 헤어, 바디 제품들만 사용했던 것 같다. 뭐 크게 다를 게 있나 싶다. 다시 태어났으니 애기지 애기.


언젠가 써두었던 메모다.

방사선,
발사되지 않을 우주선에
매일 탑승하는 기분

그렇게 매일 같은 배경을 바라보며 우주선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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