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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희 Nov 28. 2023

발가락도 어플로 찍어야 예쁘다

노화의 이모저모

한 달에 한 번. 예뻐지기 위한 노력(염색)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늙어 보이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멋내기 염색은 당연히 아니고. 새치머리 염색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새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흰머리가 훨씬 많아서 더는 우길 수 없다. 요즘 염색 주기는 한 달이다. 서너 달에 한 번 하던 것에서, 버티고 버텨 두 달에 한 번. 이제는 그마저도 버틸 수 없어 한 달에 한 번은 해줘야 봐 줄만 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가르마는 허옇게 눈에 거슬린다. 염색 주기가 더 짧아진 것이다. 하얘지는 건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시작으로 몸 곳곳의 털이 하나 둘 색이 바래져 간다.




흰머리는 늘지만 반대로 줄어드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머리숱. 누구 못지않은 머리숱을 자랑하던 나였다. 자동핀은 튕겨 나가기 일쑤였고, 부러져 버린 핀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미용실에 갈 때마다 머리숱이 많아 좋겠다,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딱 거기 까지면 괜찮았을 텐데.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둥의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말을 듣기도 했고, 난감해하는 표정은 덤으로 받았다. 미용실에서는 숱 많은 게 왜 그렇게 미안했던지.


첫째 낳고 빠진 머리는 삐죽삐죽 잔디인형 마냥 못난이 시기를 거쳤어도 거의 원래 상태가 되었다. 둘째 낳고도 그런대로 괜찮았기에 셋째를 낳고도 전혀 걱정 하지 않았다. 그런데 들쑥날쑥 올라와야 할 녀석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셋을 낳으면 얘기가 달라지는구나. 새로 자라는 속도가 빠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수채가 막힐 정도로 시커메지는 것은 말해 무엇하리. 머리숱이 기하급수적으로 줄면서 샤프심 같이 굵던 머리카락은 점점 가늘어지기까지 했다. 제대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쯤 되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소중한데, 막둥이 녀석이 한몫 보태 준다. 4살 막내의 애착은 다름 아닌 머리카락. 졸리거나 속상하거나 불안할 때 머리카락을 찾는다. 처음에는 지 머리카락만 만졌다. 언젠가부터 내 머리카락도 만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잘 때 엄마 머리카락이 꼭 있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그의 손놀림은 나날이 변화했다. 처음에는 쓰다듬듯 만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몇 년간 그 방식이 진화하더니, 이제는 아주 적은 양의 머리카락을 쥐고 꼬아 댄다. 이게 아주 미칠 노릇이다. 특히 자려고 누웠을 때, 두피가 다 벗져질 듯 신경질 나게 아프다.

"보물아~ 엄마 대머리 될 것 같아. 그만 만져줘."

"괜찮아. 다시 날 거야."

왜 네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고. 네 머리는 다시 나지만 내 머리는 다시 안 난다고.

다음날 아침이면 여지없이 가위를 들고 막둥이가 만져대던 엉키고 엉킨 머리카락을 잘라낸다.




매일 보는 얼굴 곳곳에 주름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다. 분명 하나 둘 늘어가는 걸 보지 못했는데, 한 번에 늘었나 싶게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보인다. 눈가의 주름은 당연한 것이고. 어느 순간 손도 나이 들었음을 느꼈다. 얼굴의 주름은 속여도 손과 목의 주름은 속이지 못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수면 중 베개나 이불 주름에 눌린 볼 위의 자국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노화로 인한 탄력저하인가? 이 자국마저도 주름이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지난여름   만에 셀프 페디큐어를 했다. 시원해 보이는 파란색과 노랗고 깜찍한 스마일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었다. 뭐지?  예쁘다. 이상해서 발과 사진을 번갈아 봤다. 이런. 평소에는 전혀 몰랐던 발가락의 미세한 주름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도 모르는 사이 반갑지 않은 주름은 발가락에도 쪼글쪼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플을 켜서 찍어본다. 예쁘지는 않고, 그냥  줄만 해졌다. 발가락도 어플로 찍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평소 쓰지도 않는 욕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나이 마흔셋에 늦어도 한참 늦은 라섹을 했다. 수술   가지 검사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해 준다. 수술로 시력이 좋아져도  노안이  나이인지라  곳은  보이겠지만(수술했으니), 가까운 곳은  보이지 않을  있다(노안이니) 내용이었다. 책의 글씨가  안 보이게 된다면, 그건 수술이  안 되서가 아니라 노안이 와서 그렇다는 친절한 부연설명과 함께. 그렇다고 해도 수술을 하겠냐 묻는다. 아무렇지 않은 , 이미 알고 있었던 . 덤덤하게 알겠노라. 하겠노라 대답했지만. 흔들리던  동공을 들키진 않았는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다른 중요한 안내사항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노안"이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노화는 몸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났다. 겉으로 보이는 곳만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장기관도 늙어가더라. 다른 곳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위장이 젊음을 잃어가는지 소화가   된다. 고기를 많이 먹고 자도 아침이면 소화가 다 되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과식하거나 때로는 많이 먹지 않아도 소화를 시키지 않고 잠들면, 꼼짝없이 다음날 속이 많이 아프고 종일 굶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 상태가 하루 만에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고 며칠 죽을 먹거나 물만 마셔야 할 때도 있다.


언젠가부터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살이 빠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몸무게는 다르지 않은데, 계속 비슷한 소리를 듣게 되어 찬찬히 생각해 봐도 모르겠더라. 어느  엘리베이터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니, 다리가 얇아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허벅지가 제법 가늘어진 것이다(참고로 집안 대대로 하체가 튼실한 집안). 살이 예쁘게 빠진  아니고 나이 들고 운동하지 않아 근육이 빠진 거였다. 멋모르던 이삼십  때는 얇은 다리가 예뻐보이고 부러웠는데, 이제는 줄어드 근육이 아깝고 튼실하던 허벅지가 그립다.


어딘가에 긁히거나 상처가 생기면 언제인가부터 회복이 더디다. 너무 더디게 아물어 이게 낫긴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종종 있다. 애들은 다쳐도 언제 다쳤다 싶게 금방 새살이 돋아나던데. 이런 것에서도 노화가 느껴지더라.




노화가 어디 몸뿐이겠나? 마음도 나이들어감을 느낄 때가 있다.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앞서 망설이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때가 있다. 젊은 시절의 망설임과는 다른 머뭇거림이 있다. 이것은 분명 마음의 노화일터. 신체의 노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겠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요즘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것은 누구도 피할  없다. 세월을 비켜   없으니 자연스럽고 멋스럽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그게  아이들 때문인지, 아직은 흰머리가 당당하지  자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훗날 염색끼 없이 시크하게 빛나는 백발을 하고, 청바지에  셔츠를 멋지게 소화해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오랫 만에 어릴 적 친구를 만나, 서로 "넌 어쩜 그대로니!"라고 하지만 그대로가 아닌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치레로 하는 말도 아니다. 그건 아마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너와 내가 그대로인 것이겠지. 혹은 서로가 그대로이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Linda Wright - 자연스럽고 멋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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