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나무학교 학습일지
4월 21일 일요일, 오늘은 무주의 토종과일나무학교에서 실습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멀고 먼 무주로 두 번째 여행을 갑니다. 지난번에는 예산에서 출발했는데 아침 일찍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서도 수업에 1시간 정도나 지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에서 출발합니다.
휴일 아침 한성대 입구역에서 4호선 첫차는 탑니다. 5시 37분입니다. 서울역에 50분경에 도착. 부지런히 계단을 뛰어 올라가 6시 3분에 출발하는 대전행 KTX 열차를 탑니다. 대전까지는 69분 걸리고 차비는 21,300원입니다. 돈으로 시간을 샀습니다. 자리에 앉았다 잠깐 있으니 7시 2분. 대전역입니다. 5분 정도만 빨리 왔으면 7시 20분에 무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지금은 어렵습니다. 18분 만에 대전역에서 대전 복합터미널까지 가기는 무리입니다. 대전역 앞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복합터미널로 갑니다.
8시에 출발하는 무주행 버스표를 사고 터미널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요즘 날씨는 참 좋습니다. 아침 온도는 14도, 낮에는 20도 정도입니다. 지금 남부 지방에서는 비가 오고 있다는데 여기는 조금 흐립니다. 8시. 무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대전에서 무주로 가야 하는데 갑자기 대구방향으로 차가 달립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역시 차는 오른쪽으로 90도 가깝게 방향을 틀어서 정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금산을 지나 동남쪽 방향으로 달립니다. 옛날에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입니다. 계백장군이 신라군을 맞서 최후의 전투를 벌인 황산벌은 금산의 서쪽에 있습니다. 그 금산의 동쪽을 지나 버스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립니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산의 모습이 서해안이나 넓은 평야지대에서 볼 수 있는 산들처럼 조그맣지 않습니다. 높이 솟은 산들이 하나씩 차창을 가득 메우고 뒤로 뒤로 스쳐 지나갑니다. 중고등학교 때 우리나라가 산악국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여기와서 비로소 절감을 합니다.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렇게 산이 많은 곳으로 들어와 보니 마음이 너무 편안합니다. 저는 비교적 평야지대인 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도 외국에서 산이 안보이는 곳에서 살 때 무언가 허전하고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8시 47분, 무주 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50분에 안성으로 가는 완행 버스에 올라탑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이것저것 부지런히 검색을 했더니 휴대폰 전원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갑니다. 오늘 실습시간에 찍을 사진도 많을 텐데 충분히 충전을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됩니다. 버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산악 지대로 들어갑니다. 높이 치솟은 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달리다가 빙돌아서 계곡을 따라 내리 달립니다. 봄날 시외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맑은 바람이 시원합니다. 무색무취의 산소같이 순수한 공기입니다.
안성 시외버스 터미널에 9시 20분경 도착했습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마침 조그마한 버스가 하나 서 있어서, 다가가 버스 안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혹시 이차가 진도리 가는가요? 하오동 마을이요."
"아니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하오동 마을 가는 버스 시간표를 찾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합실에 있는 어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방금 9시 30분에 동향 가는 버스가 떠났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제가 물어봤던 그 차입니다. "동향 가는 차인가요?"라고 물었어야 하는데 잘못 물어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차를 놓치고, 택시를 잡아타고 급히 하오동마을로 갑니다. 20여분쯤 탔을까, 기사분이 "여기입니다."라고 하면서 차를 세워줍니다. 요금은 1만 원입니다. 산촌마을로 올라가는 길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돌아가는 길이 바쁜지 그 택시는 방향을 돌려 오던 길로 다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이리저리 길을 물어 실습장으로 올라가니 아직 수업 시작 전입니다. 수업장으로 사용되는 하우스 안에 10여 명의 학생들이 모이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실습 주제는 <봄 나무 돌보기와 자생지 탐방>입니다. 먼저 장영란 선생님의 나무 돌보기 설명과 시험포에서 할 일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오늘 중요한 과제는 겨울에 덮어 놓았던 나무옷을 제거하여 밑동을 드러내는 것, 각 나무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 예를 들면 꽃이나, 잎 그리고 주변의 공생식물을 조사하고 병충해를 살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각 모둠별로 시험포로 나갔습니다. 두 손에는 벌레를 쫓기 위해 크레졸 비누액을 담은 조그마한 페트병을 들었습니다. 이것들을 나무 가지 사이에 매달아야 합니다. 크레졸의 독한 냄새가 특히 노린재를 퇴치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배 모둠에 속해서 배나무 조사를 나섰습니다. 이곳 시험포의 배나무는 20여 그루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종류는 돌배, 산돌배, 문배, 참배, 신배, 백운배 등입니다. 각 나무별로 줄자로 키를 재고, 둘레를 잽니다. 둘레도 밑동 둘레, 윗부분 둘레로 나누어 잽니다. 이렇게 꼼꼼히 나무별로 기록을 해나갑니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시간을 소비하면서 나무 하나하나를 꼼꼼히 조사하는데 그만한 이익이 있을까요?"
"이렇게 조사하면서 나무와 좀 더 친해지라는 뜻이 아닐까요?"
바보같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입니다. 나무를 심어 놓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언제 심었는지, 어떻게 크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등등을 알려면 아무래도 이러한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무는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고 또 동물하고 다르니 어떤 뚜렷한 특징도 없습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서, 그리고 이런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서 각 나무의 상태를 세밀이 알게 된다면 그만큼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그 결과는 더 많고 맛있는 열매로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 조사를 하면서 배나무 일부 이파리에 노란 반점이 생긴 것을 보았습니다. 같이 조사하는 선생님 이야기로는 이것을 적성병이라고 한답니다. 이 병은 향나무가 그 병균의 온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험포 군데군데에 보리와 밀이 심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무당벌레를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보리와 밀에 진딧물이 자라면 그것을 먹기 위해서 나무에 붙어 있던 무당벌레가 모이는 것입니다. 덕분에 나무는 무당벌레의 피해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이외에도 시험포에는 나무들 사이사이에 수선화, 지칭개, 망초, 씀바귀, 초롱꽃, 작약, 잔대, 화살나무, 딸기 등등 등등 정말로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첫 오리엔테이션 때, 왔을 때는 썰렁한 시험포였는데 나무마다 식물마다 새싹이 나오고 크기 시작하니 볼만한 것들도 많고 배울 것도 많아졌습니다.
같은 모둠에 속한 다른 멤버는 각 나무 아래에 겨울 동안 덮어 놓았던 볏짚이나 풀을 제거합니다. 그 안에는 반쯤 썩은 나무줄기가 들어있기도 하고 두꺼운 나무껍질, 혹은 제법 굵은 통나무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이것들이 오랫동안 나무 아래에서 썩어가면서 거름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나무 거름으로 뭐가 좋은지 항상 궁금했었습니다. 오늘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나무줄기나 가지 자체가 썩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수업 때, 자작나무와 오리나무를 거름으로 사용하면 좋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키워서 땅속에 넣어 두면 거름이 되어 30년은 간다고 한 선생님의 설명이 생각납니다. 겨울 준비는 이렇게 마른풀 아래에 썩은 나무줄기를 넣어 나무옷을 만들어 입혀야겠습니다.
이러한 나무옷을 벗긴 뒤, 중요한 것은 공기가 통하고 햇빛이 잘 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 전체에 바람이 통하고 햇빛이 골고루 비춰지도록 해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열매를 잘 맺는다고 합니다. 크게 자란 주변의 풀들도 제거해 주면서 하나씩 하나씩 배나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배나무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뭐가 있는지, 배나무에 붙은 벌레는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배나무와 친해지고 배나무의 특징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배나무의 이파리 모습이 친숙해진 것이 큰 수확입니다. 배나무 잎은 배처럼 둥그스름합니다.
6년쯤 전에 저는 아내와 함께 사과나무, 배나무, 감나무 등을 시장에서 사다 밭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그 밭을 복토하면서 이리저리 과일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배나무라고 알고 키운 나무에서 작년에 사과가 2개 달려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니 배나무인 줄 알았는데 사과나무였네." 아내가 옆에 있었으면 한참을 같이 웃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배나무 잎인지, 사과나무 잎인지, 자두나무 잎인지, 개복숭아 잎인지 구분을 못했는데 이제 배나무 잎만큼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배나무의 수형입니다. 저는 밭에 심어놓은 배나무를 잘 키워볼 욕심에 인터넷을 통해서 배나무 수형에 대해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런데 잘못 배워서 배나무의 이상적인 수형은 마치 포도나무처럼 철제로 사각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덩굴처럼 키워야 한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배나무 전문 제배 업자들의 방식일 것입니다. 배나무가 자연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도 모르고, 일반적인 재배 방식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전문가의 방법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험공부를 할 때 기초는 배우지 않고 답만 외우는 방식입니다.
이번에 배나무를 조사하면서 배나무가 자연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본 것은 저에게는 가장 큰 수확입니다. 우리 모둠에서 조사한 돌배나무 하나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습니다. 10m 정도 되는 배나무입니다. 나무 모습이 전체적으로 길쭉한 삼각형입니다. 이것이 자연상태의 모습, 즉 자연수형이라고 합니다. 배나무가 원래 좋아하는 모습을 알지 못하고 크고 달콤한 배를 얻기 위해 기형으로 키우는 생산업자들의 배나무만 보고 그것을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시험포의 배나무는 대개 우산형태로 관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나무 수형을 개심형이라고 합니다. 높이는 1m나 1.5m 정도에서 가운데 큰 줄기를 자르고 그 높이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유인하여 키웠습니다. 나무가 성장하면 이 키도 조금씩 높아진다고 하니 염두에 두고 높이를 관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배나무와 사과나무는 가지가 지면과 수평에 가깝게 키워야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으로 키우는 모양입니다.
결국 사과나무로 판명된 배나무는 너무도 빈번하게 자리를 옮긴 바람에 아직도 그 모습이 빈약합니다. 키는 1.8m 정도 되는데 40도 정도 옆으로 삐딱하게 굽어져 있습니다. 중간에 나와서 자란 가지는 하나도 없으니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 마치 막대기를 꽂아 놓은 것과 같습니다. 금년에는 나무 끝 부분에 가지가 5개쯤 나와서 이파리가 제법 풍성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과나무를 어떻게 수형을 잡고, 키워야 할지 계속 고민했었습니다. 오늘, 같은 모둠의 주영식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옆으로 과감하게 눕히고 가지를 중간중간에 나오게 해서 각가지를 직각으로 올린 뒤 그 가지에서 옆으로 가지를 나오게 하여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줍니다. 그런 수형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제가 키우는 나무에 감히 적용할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이제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키워봐야겠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시험포 인근의 숲 속으로 가서 자생지 탐방을 하였습니다. 자생지란 나무나 풀들이 스스로 자라는 자연상태의 숲을 말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자생지는 기다란 산 계곡을 따라 나무들이 높이 자란 곳입니다. 그곳에 옛날에는 다랭이 논이 있었다고 합니다. 논이 세월이 흐르면서 넓은 초지로 변하고 그위로 나무들이 높이 자라나 위쪽 하늘을 엷은 색의 파란 잎사귀들로 덮어 마치 거대한 교실과도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낸 곳입니다. 푸른색의 햇살이 가득 찬 자연의 숲 속 교실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보면 볼수록 신기한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 으름나무며 머루나무와 다래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고사리, 취나물, 삽주, 머위, 원추리, 둥굴레, 우산나물 등이 자라는 것을 보고 관찰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가는 길에 찔레나무순과 국수나무 순을 먹어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찔레나무는 집주위에 너무 많아 짜증 나는데 봄에 그 순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꼭 기억해 둘 만한 좋은 정보입니다. 먹을 수 있는 산취나물과 독초인 족두리풀을 구분하는 법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작년에 집 주위에 고사리를 키워보고 싶어서 지리산고사리를 1포대나 사서 심었는데 겨우 10 뿌리 정도 살렸습니다. 장마 때 물관리를 잘못한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생지에서 자연의 고사리를 만난 것이 아주 반가웠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그런 자생지가 있다면 가끔씩 들러서 채취해 텃밭에 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생지 탐방이 끝나고 내려오면서 산 아래로 넓게 4월의 봄에 펼쳐진 녹색의 단풍을 보았습니다. 나무의 어린싹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면서 만들어낸 봄날의 장관입니다. 녹색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녹색이 있다니! 옅은 녹색, 짙은 녹색, 하얀 녹색, 노란 녹색, 파란 녹색, 붉은 녹색 등등등. 참으로 다양한 녹색의 향연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배우고, 많이 즐긴 봄날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