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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태홍 May 23. 2024

나무학교 세 번째 실습 - 나무 관리와 공생 식물

2024년 나무학교 학습일지

5월 19일 일요일 오전 4시, 부스럭부스럭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찾습니다. 귀찮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으나 갑자기 오늘 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무주에 있는 토종과일나무학교에서 실습하는 날입니다. 겨우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합니다. 지난번에는 아침을 챙겨 먹다가 첫 차를 놓칠뻔했습니다. 오늘은 옷만 챙겨 입고 곧바로 집을 나섭니다.


기온은 15도, 봄날 새벽공기가 시원합니다. 가까운 지하철로 가 일요일 아침 첫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갑니다. 평소 같으면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데 오늘은 허리가 아파서 천천히 기듯이 올라갑니다. 며칠 전에 물건을 옮기다 허리를 다쳤습니다. 6시 3분 열차를 탔습니다. 5분 먼저 출발하는 차가 있어서 표 없이 타려고 했는데 그러면 50%의 수수료, 약 12,000원을 물어야 한답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열차 안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눈을 좀 부치려고 뒤척이다 보니 금방 대전역입니다. 7시 12분. 지난번에는 동서남북도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대전역의 유명한 성심당을 찾아가 빵 2개를 사서 가방에 담고,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복합터미널로 갑니다. 표를 끊고 음료수 하나를 사니 벌써 8시입니다. 무주 가는 직행 버스를 탔습니다. 승객은 2명입니다. 저와 할머니 한분.


이 길을 이제 3번째 가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갈 때는 가는 길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차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앉아서 물을 마시며 아침을 먹습니다. 5월의 산야. 산등성이의 녹음이 더 짙어졌습니다. 도로에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뚫고, 버스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질주합니다. 


50분 만에 무주 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데 아직 오전 8시 50분입니다. 무주 안성으로 가는 9시 차 완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에는 7명 정도 승객이 탔는데 모두 노인입니다. 70대, 80대가 많습니다. 등산객 차림의 어떤 사람이 차에 오르면서 묻습니다. 


"이 차, 적성산에 가는가요?" 

"예, 거기 지나가요."

다른 승객이 답합니다. 그 등산객이 또 이렇게 묻습니다.

"여기는 어린 학생들이 안 보이네요?"

"애들은 다 학교에 갔지."

80대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엥?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그 등산객은 아주 사교적입니다. 몇 마디 말로 버스 안의 주목을 끌어들입니다.

"저는 경기도에서 왔는데요, 거기는 어린애들이 정말 많아요. 학생들도 많고요..."

어떤 할머니가 대꾸합니다.

"여기는 아이 낳는 사람도 없어요. 동네 천지에 애기 하나 없다니까."

더 이상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운전기사가 올라와 운전대 앞에 앉으니 차가 출발합니다. 기사는 50대 정도 되어 보입니다. 이 중에 제일 젊습니다.

버스는 한참을 달리다가 갑자기 덜컹덜컹거리며 달립니다.

"아니 기사양반, 차가 왜 이렇게 덜컹거려요?"

짜증 난 듯이, 어떤 할아버지가 기사에게 외칩니다.

"죄송합니다. 차가 똥차라서 그럽니다."

젊은 기사 양반의 경쾌한 답변이 차 안에 울려 퍼지자, 버스도 정신을 차렸는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았습니다. 인구는 줄고, 젊은이들은 없고, 버스는 낡고 그렇다고 도로 보수를 안 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짜증 나는 상황입니다. 등산객은 적성산사고라는 곳에서 내렸습니다. 적성산사고? 이름이 이상합니다. 무슨 큰 사고가 난 곳인가? 


무주 안성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9시 30분입니다. 10분 전에 동향 가는 차가 있었는데 놓쳤습니다. 그런데 터미널 차 시간표에 온통 붉은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5월 1일부터 노선 운행이 중지된 버스 편입니다. 너무도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의 버스 노선 운행 중지는 조금씩 조금씩, 살그머니 살그머니 진행됩니다. 그런데 여기는 너무도 과감합니다. 다행히 나무학교에서 택시를 보내주어 그 차를 타고 등교를 했습니다. 


세 번째 맞이한 오늘 토종과일나무학교 수업은 먼저 장영란 선생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자연초생의 원리공부>와 <과일나무 아래 공생식물 관리>입니다. 모두 5쪽이 되는 강의 자료를 받았는데 잘 알지 못하는 풀이름이 가득합니다. 자세히 보니 <산야초분류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자연초생이란 과수 아래에서 수많은 풀이 끊임없이 자라도록 하여 자연에서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특정 잡초가 우점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어린 나무는 풀에 덮이지 않도록 나무 주변을 제초해 줍니다. 풀베기할 때는 발목 정도까지만 잘라주고 한꺼번에 모두 자르지 않는 것이 요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연농법으로 과일나무를 키우면 건강하게 잘 자라고 벌레피해도 적다고 합니다.


공생식물이란 과일나무와 함께 그 아래에서 자라는 식물을 말합니다. 덩굴 식물이나 벼과 사초과 풀 그리고 쑥, 토끼풀, 쇠뜨기, 망초 등은 생장점을 베거나 뿌리째 뽑아 없애 개채수를 조절합니다.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5가지 공생식물관리 요령을 제시했습니다. 1) 토종나무와 토종 풀이 공생하도록 한다. 2)  식물은 같은 과끼리는 병충해가 비슷하니 식물분류표를 보고 다른 과끼리 조합하여 기른다. 3) 미나리, 머위, 한련초 등은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하므로 이런 식물이 보이면 배수상태를 점검한다. 4) 박하, 민트와 같은 향기 나는 식물을 활용하여 벌레 피해를 막는다. 5) 애기똥풀, 여뀌와 같은 독초는 없애지 말고 섞어 키운다. 초석잠, 메리골드, 수선화, 부추, 꽃무릇, 상사화 같은 살균, 살충 식물도 함께 키우도록 한다.


그리고 큰 나무 아래에 심기 좋은 풀로는 어수리, 참나물, 더덕, 삽주 등이 있고, 중간나무 밑에 심기 좋은 풀로는 구절초, 참취, 어성초, 대파, 달래, 부추 등이 있으며 , 작은 나무 곁에는 키가 작은 괭이밥, 쇠비름, 눈개불알풀, 제비꽃 등이 좋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어떤 식물을 억지로 구해서 심기에 앞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풀을 잘 살리면서 관리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키우는 과일나무 관리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다양한 공생식물을 조사하고 관리하고 서로 잘 어울리도록 하려면 보통일이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고 느긋하게 오래오래 배우고 공부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서유구는 나무 키우는 책을 <만학지(晚學志, 나이가 들어 뒤늦게 배우는 책)>라고 이름을 지은 모양입니다.


오늘 현장 실습은 1) 가지 유인, 2) 봉지 씌우기, 3) 나무아래 공생 식물 알아보기, 4) 끈끈이 트랩 달기입니다. 그리고 5) 모둠별 나무 특성 발표가 있었습니다. 과일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시험포에 들어 서니 지난달에 왔을 때보다는 규모가 두 배는 더 커진 것 같습니다. 나무 이파리들이 빽빽하게 들어섰고 그 밑에서 자라는 식물들도 파릇파릇 잎사귀들이 자라나 부피가 커졌습니다. 시험포를 맨 처음 봤을 때는 앙상한 가지만 있어서 규모가 작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 아래에 서있는 학생들이 작게 보입니다.


가지 유인에 대해서는 나무 중심에 해와 바람이 잘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모든 가지에 그늘이 지지 않게 해야 하고, 주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지 관리를 잘못하면 나무가 제멋대로 자라거나 성장의 기세를 꺾여 약해진다고 합니다. 주지는 가운데서 하늘로 치솟는 중앙 줄기를 말하는데 그 줄기를 자를 경우 그 잘라진 줄기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는 가지가 또 각각 주지 노릇을 합니다. 이때 나누어진 각각의 주지도 세력이 강한 하나의 주지를 선별하여 관리하도록 합니다. 이론은 이렇게 잘 들었으나 막상 전지가위를 들고 보니 어느 것이 주지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알려준 주지를 붙잡고도 옆 가지들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야겠습니다.


가지 유인은 나무가 과일을 맺을 때 중요하므로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배와 능금은 90도 정도 눕히면 꽃눈이 잘 나오고 앵두, 자두, 오얏은 45도로 눕혀서 가지가 뻗어나가게 해야 열매가 잘 맺게 됩니다. 과일나무 가지를 유인할 때는 유인끈, 유인추, 그리고 E클립이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저는 실습장에서 처음으로 E클립을 사용해 봤는 데 사용이 쉽지 않아 가지가 부러졌습니다. 나무 관리는 실습과 연습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지난 수업 때 접목법을 배워서 집에 가서 20개 정도 접목을 해봤는데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접목뿐만 아니라, 가지를 눕히고 유인하는 것, 주지를 찾아 관리하는 것, 그리고 전정하는 것도 모두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계획에 따라 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예술에 가깝습니다. 


복숭아나무 열매솎기와 봉지 씌우기도 이날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작년에는 김포도시농부학교에서 포도나무 봉지 씌우기를 배웠는데 그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과일별로 봉지가 각각 따로 있고 크기와 구조도 각기 다른 것이 신기합니다. 과일나무는 묘목만 심어 놓고 기다리면 알아서 맛있는 열매를 맺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편하게 보여서 과일나무나 심어서 먹자고 시작했는데 상추나 고추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또 과일나무 옆에 끈끈이 트랩을 달면서 수많은 벌레를 보고 놀랐습니다.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듯이 온갖 벌레들이 빡빡합니다. 과수원이라서 이리 많은가 생각했는데, 아마도 제 집의 텃밭도 많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끈끈이를 달아봐야겠습니다.


오늘 실습장에서 거대한 앵두나무를 봤습니다. 이것도 충격입니다. 제가 상상하던 앵두나무는 작고 앙증맞은 그런 쪼그만 앵두나무였습니다. 초가집 뒤편에 오래된 앵두나무 고목이 있어서 여름이 되면 빨간 앵두를 줄줄이 보여주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앵두 묘목을 부지런히 사다가 심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죽어서 금년에도 앵두나무 묘목 2, 3그루를 사다가 심을 생각이었습니다. 옆집과 경계선에 2m x 10m 정도 되는 땅이 있는데 거기에 심으려고 생각했는데 달리 생각해야겠습니다. 시험포에서 본 앵두나무는 집채만 한 것으로 높이는 4층 건물 정도, 가지의 폭은 10m가 훨씬 넘은 것입니다. 15년생이라고 하는데 100년 넘은 고목인 줄 알았습니다. 나무 밑동의 가지 하나가 잘려 있는데 굵기가 사람 몸통만 합니다. 앵두나무를 키울 때는 부지런히 가지치기를 해줘야겠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풍성하게 달린 맛있는 앵두를 정말 원 없이 먹어본 것도 처음입니다. 1달 뒤에 가면 붉은 립스틱 색깔의 앙증맞은 앵두는 다시 볼 수 없겠지요.


어느덧 4시가 넘었습니다. 바깥 온도는 20도, 하우스 안의 온도는 27도가 넘습니다. 아직 5월인데 벌써 한여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준비해 둔 모종을 받았습니다. 토종 가지 모종 3개, 태양초 고추모종 3개, 그리고 토마토, 곤드레 등등 작은 비닐봉지가 가득 찼습니다. 고추 모종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농부학교에서 배운 모범적인 모종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줄기가 시중에서 산 고추모종보다 2, 3배는 굵고 키는 조그만 것이 딴딴한 역도선수 같습니다. 모종을 키울 때는 그렇게 키워야 한다고 배웠는데 여기 장 선생님이 키운 모종이 그런 모종입니다.


이제 부지런히 돌아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봄날 오후, 아직 해가 높이 떠 있습니다. 택시는 굽이굽이 굽어진 길을 빠르게 달려 나갑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조용한 차 안에서 기사분이 나지막이 노래를 부릅니다. 급한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도로 앞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시선을 돌려 주변 산천을 둘러봅니다. 넓은 들 사이에 개울이 흐르고 그 너머에 높은 산과 산등성이, 그 아래 집들이 보입니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 좋은 곳 묻어주.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주. 내 친구가 나 찾으면 엄마 엄마 울지 마.  

논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 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아갑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벌레 우는 밤, 시골집 뒷산길이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노래가 슬프기도 하고 애달픕니다. 이연실의 찔레꽃이라고 합니다. 너무 좋다고 박수를 치니 기사분이 자신이 직접 지은 새로운 찔레꽃노래 가사를 보여주면서 말합니다. 

"나이 먹다 보니 감정이 메말라서... 가끔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놀랐네요. 너무 잘 부르셔서."

장사익의 찔레꽃도 부탁하여 들어보고 싶었으나 벌써 안성 버스터미널. 막 출발하려는 버스 옆에 내려줍니다. 서울로 직행하는 고속버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출발은 서울에서 했지만 귀가는 예산입니다. 


우선 무주 가는 차를 찾아야 됩니다. 터미널 안 대합실로 급히 들어가 매표소의 안내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매표소는 비어있고 안내원은 없습니다.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편의점에 물어보라고 합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물어보니 차 시간을 알려줍니다.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편의점을 나와서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둘러보고 있으니 어떤 노인이 완행 편, 직행 편, 무주 가는 버스 시간표 보는 법을 알려줍니다. 그러고 보니 대합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안내원입니다. 


60대 초반의 어떤 아주머니는 자기도 무주를 거쳐서 대전까지 가니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저는 무주에서 대전까지 가서 거기에서 기차로 천안으로 올라가서 장항선으로 바꿔 탑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스 편이 갑자기 없어져버리면 여기 사는 주민들은 엄청 불편하지 않나요?"

붉은 줄이 잔뜩 칠해진 버스 노선 시간표를 보면서 그 아주머니에게 물어봅니다.


"저는 여기 주민은 아니고 제 어머니가 여기 살아요. 그런데 불편한 거 없대요."

"왜요?"

"전화만 하면 행복버스라는 차가 있어 데리러 오니까요. 오히려 편하시다고 해요."

"아, 그런가요? 주민들한테는 더 좋겠네요."

군청에서 이렇게 과감하게 버스 노선을 없앤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는 한 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큰 종이가방을 들고 배낭을 멨습니다. 


"제가 그 보따리 들어드릴까요?"

"아니요. 가벼워요. 상추하고 미나리가 들어있어서..."

"어머니가 챙겨주신 건가요?"

"예, 어머니 혼자 사시는데, 어머니는 여기가 그렇게 좋대요. 나이가 92세인데......"

"우와. 나이가 많으시네요."

"자식이 6남매인데, 자식들이 어머니를 도시로 모시려고 해도 안 간대요."

"왜요?"

"도시 나가면 죽는다고. 하하. 혼자서 농사짓고 정신도 말짱하고 아주 건강하세요."

"부럽네요.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거."


무주 가는 버스가 들어왔습니다. 버스에 올라타고 무주읍으로 갑니다. 언뜻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적성산사고'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아침에 등산객이 내렸던 곳입니다. 도대체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봅니다. 적성산 사고(赤裳山史庫). 1618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서고였다고 합니다. 전란을 피해 귀중 서적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아, 이 중요한 곳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이 무주 지역은 북방의 오랑캐나 서쪽의 당나라 군대 혹은 남쪽의 왜구로부터도 안전한 곳이라고 선택된 5 지역 중 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십승지(十勝地)입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말로 피난 가면 안전하다는 장소 10곳을 말합니다. 난리를 피해 몸을 보호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난 곳입니다. 무주도 혹시 그런 곳이 아닐까? 인터넷을 뒤져봅니다. 영월의 정동(正東) 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현 봉화읍), 단양의 영춘, 그리고 무주의 무풍 북동쪽이 나옵니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그럼 그렇지. 무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풍 부근이 10 승지 중 한 곳입니다. 지금의 무풍면 일대라고 합니다. 10 승지의 공통점은 대부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첩첩산중으로 외부에서 접근이 어렵고 깊숙한 골짜기이지만 적당한 넓이의 농토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잠시 머무는 것보다는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갈 조건이 충족된 지역이 10 승지라고 합니다.(주1) 


이렇게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2023년 10월 2일 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무주가 전국 1위 장수마을이라는 것입니다. 100세 이상 노인이 가장 많은 최장수마을이 무주입니다. 같이 무주행 버스를 탄 아주머니는 자기 어머니가 사는 마을에 얼마 전까지 빈집이 몇 채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합니다. 자기도 도시생활이 끝나면 이곳으로 귀촌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산아래 마을 곳곳에 보이는 집들이 깨끗합니다. 시골인데도 허물어져가는 집들은 보이지 않고 말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을 줍니다. 생각해 보면 무주는 젊은이들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수도권으로 서울로 가더라도 어른들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 이곳을 계속 찾을 테니까요. 서울이 좋은 점도 많지만 좋지 않은 점도 많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반대편에 무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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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날 강의자료는 다음카페 토종과일나무살리기 사이트의 24년 나무학교 수강생방에 있습니다.(https://cafe.daum.net/nativetrees/t4Ki)

주1) 눌산, 「최고의 피난처 베스트 10, 십승지 무풍」, 2022.3.28. https://nulsan.net/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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