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 일주일의 기록 - 슬픔이 없는 15초
슬픔이 없는 15초란 시집을 손에 들고 있었다. 아들 전화가 온 그 순간. 아들이 전세금을 날리게 생겼단다. 건물주인이 사라졌고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것 같다는 이야기. 적지 않은 돈 1억 6천여만 원. 대학입학 후 10년의 타지 생활 끝에 서른을 목전에 두고 탈탈 털릴 예정인 아들이 말한다. ‘죄송합니다’.
‘잃은 것이 몸이 아니라 돈 인 게 어디냐고,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다’라고 아들을 위로하는데 나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사시나무 떨리듯 했다. 세상이 시끄러웠는데, 누구는 전세 사기 때문에 죽기도 했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아들이 사는 방은 괜찮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을 읽는 눈이 아둔한 엄마가 또 아들을 궁지로 몰았나 싶은 자책에 숨을 쉴 수가 없다.
월세 살이를 하던 아들은 중소기업 청년전세대출을 알게 되면서 방을 바꾸고 싶어 했다. 조금만 더 넓은 방이었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 눕기 바듯한 방에서 한 뼘 더 넓은 방, 햇빛 한 줌 더 드는 방을 찾아 아들은 대출을 받고 이사를 했다.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했다. 방이 조금 넓어진 것도, 이자를 내지만 월세가 줄어 여유도 생겼다고 기뻐했다. 방 찾는 일, 은행업무도 스스로 잘해 낸 스물일곱 아들에게 엄마는 칭찬밖에 해줄 것 이 없었다. 다 컸다고, 멋지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그런데 3년 여가 지난 오늘, 그 기쁨은 부메랑이 돼 아들을 쓰러뜨렸다.
한없이 소박하고 누구에게는 별거 아닐 그 작은 욕심도 과했던 걸까? 하루 이틀 지나며 대략 상황을 파악하니 전세금 회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졸업 후 일찍 취업해 꼼지꼼지 모은 돈은 물론 어린 시절 받았던 세뱃돈, 칭찬 한가득하던 시상금, 목숨 걸고 다녀온 군대에서 송아지 한 마리 살 것 같은 용기로 모아 왔던 저금까지 이런저런 아들의 기본 자금이 한꺼번에 사라지게 생겼다. 거기다가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로 받은 은행대출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을 모양새다.
슬그머니 원망이 생긴다. 중소기업 청년전세대출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전세대출을 보증했다. 그것을 그 건물에 대한 신뢰의 지표로 생각했다. 대출이 되는 건물이니 안심해도 되나 보다 이런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실제 아들과 나는 그 순간까지도 정부가 보증해서 대출해 준 그 돈은 안전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던, 문맹에 가까운 금융상식이 아들과 나의 현실이었다.
버팀목? 디딤돌? 이름이 뭐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세보증보험도 들 수 없는 건물(나중에 알았다)에 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대출을 실행했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둔 아들은 오늘 허방다리를 짚고 넘어졌다. 정부 정책의 수혜자에서 단숨에 피해자가 된 아들, 슬픔이 없는 15초가 인생에 언제 다시 찾아오기는 할 건지 그 큰 절망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슬픔이 없는 15초, 심보선시집,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