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 일주일의 기록 - 길고 긴 터널 앞에 서다
아들이 살고 있는 방은 oo구에 위치한 도시형 생활주택(다세대 주택이다. 다가구가 아니다.)이다. 여기 보증금 18억 5천여만 원을 묶인 10 가구가 모여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지 갑론을박한 모양이다. 이미 계약해지를 원했던 한 가구는 보증금반환청구소송에 들어갔고 2개월 후 나가기를 원하는 한 청년은 건물주와의 접촉을 시도하다 결국 경찰에 고소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건축주이기도 했던 건물주가 선순위 채권을 설정한 금융기관에 이자를 납부하지 않아 조만간 경매가 들어올 것이란 소식도 확인됐다. 한 건물에 살아도 실제 불편이 없던 나머지 세입자, 아들을 포함 대부분 청년들은 이제야 겨우 그 사실을 알고 내용증명을 보내고 탈출할 방법이 있는지 모색하자며 모임을 마무리했단다.
서둘러 서울로 갔다. 서울시가 제공한다는 전월세지원센터 무료법률상담을 받아보기 위해서였다. 아들은 웃음을 잃었고 한숨이 깊었다. 때때로 울컥 눈가가 붉어지는 아들을 보며 부모로서도 미안했고 다음 세대인 청년들에게 선배로서 고통을 안긴 것도 죄송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어쨌든 지나갈 거라고 터무니없는 낙관론을 들이대며 토닥이고 함께 조금 울고 웃었다.
‘아들, 차근차근 처리해야 할 성가신 일이 하나 생긴 거야. 너와 내 앞에. 이 문제가 우리 인생의 행·불행을 가르는 문제는 아니지. 사람 힘으로 어쩌지 못할 일, 죽음 같은 거 그런 것이 불행이지, 이 문제는 마음이 많이 쓰이고 힘이 좀 들지만 어떻게든 끝이 나는 문제잖아. 그러니 우리 끝까지 잘 가보자’
엄마랑 비슷하게 다가구와 다세대의 차이(나중에야 이것이 중요한 요소가 됨도 알았다)도 제대로 이해 못 했던 아들은 공시송달, 임차권 청구,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 경매 등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섞어 진행되는 상담창구에 앉았다. 좀 잘 알아보고 하지 그랬냐는 지청구 비슷한 소리도 들린다. 그 비난은 가뜩이나 주눅 든 이 아이 몫은 아닌 것 같다고 날을 세우며 결국 세상을 너무 믿고 사는 ‘잘못’이라고 자책한다.
아들은 이 저녁 계약해지를 위한 내용증명을 보낼 거다. 그리고 공시송달까지 최소 1개월, 그 후로 3개월이 더 지나 임차권 청구를 하고 그 와중에 경매가 시작되면 최소 1년은 걸린다는 그 경매를 지켜보며 피를 말려야 하는 시간이다. 그 와중에 전세사기 특별법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서울시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지난한 시간 또한 기다린다. 결국 아들은 언제 끝날지 모를 터널의 입구에서 이제 막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른 그 빛나는 나이가 될 생일을 얼마 앞두고 절망과 두려움 가득한 마음으로. 정말 아주 조금 더 넓은 안식처가 되길 바랐던 그 방은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고통과 자책의 처소가 될 것이다.
없어질 돈의 크기도 무겁고 무섭지만 아들이 견뎌야 할 그 과정, 그 막막하고 추운 시간이 안쓰러워 더 숨이 막힌다. 헤어지는 길, 잡아본 아들의 손은 차갑고 긴장해 있다. 토닥토닥. 스물일곱 그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혼자 두었던 엄마는 서른의 아들과 이 길고 긴 터널이라도 함께 걷겠다고, 혼자가 아니니 힘을 내라고 위로가 되지 못할 허망한 말들만 남기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