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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B Nov 08. 2023

수용에 대하여



 글을 아주 오래 썼다. 어느 정도냐하면 초등학교 저학년에 류시화의 시에 반해서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더 어릴 때도 동시를 지으면 부모님께서 엄청나게 좋아하시며 칭찬하던 기억이 난다. 기고만장해지는 대신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점점 커가며 칭찬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감이 붙더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나를 표현하기 위해 썼다기 보다는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알려주고 싶어서 써왔다. 공감받으면 행복해지고,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르구나 듣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한테 들이대며 이걸 봐! 나를 봐! 내가 보는 세상 아름답지! 이러면서 강요한 적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너랑 나는 다르네” 라고 말하면 “그렇구나” 정도로 넘어가는 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해도 “그렇군요” 하고 수긍한다. 상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말을 하든 그보다 깊게 들어가는 법을 몰랐다. 먼저 다가가는 일은 손에 꼽게 적었다. 단순히 수용하고 알려준 정보값만을 입력했다. 아마도 더 파고들 정도의 관심은 없었기 때문이 가장 컸겠다.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스스로 가진 여러 시선들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과 같다. 마음에 방이 있다고 치면 그 시선들이 벽에 마구 반사되고 굴절되어도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 시선은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도, 앞길을 막아 눈을 가리는 관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내 방을 자신으로 꽉꽉 채워두진 않았다. 나만 있긴 했지만 늘 자리를 만들어두었다. 타인이라는 연기같은 존재를 들이고, 호흡하여 들이마시고, 남은 것들은 열린 창문으로 자연스럽게 나가도록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기 위해서.


 수용하기만 할 뿐이라고 해서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이제까지 이런 내 특성을 딱히 장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결여된 부분도 아니겠지 싶었다. 그냥 그건 나다. 나라는 사람의 중심에 있는 요소 중 하나.


 편견을 가질 필요도, 크게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기에 역설적으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면 박수를 쳐주고, 숨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찔러보지 않았으니까. 인간은 부족함을 갖고있는 게 매력이고 도드라지는 지점인지라 그런 과정에서 단점이 손쉽게 슥 눈으로 들어오곤 했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점도 눈에 보인다. 그렇게 타인의 삶에 나를 녹여 묻어두곤 했다. 그럼 그 사람은 나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타인을 부정하는 일은 내게 있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하다. 위에 서술한 성향을 살피자면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확연히 보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잘한 신념들이 생긴다. 사실 그건 신념이라는 이름의 편견이다. “그렇군요” 라는 말 뒤에 ‘하지만…’ 하는 사족이 붙기 시작했다. 관계에 대한 가짓수를 늘리며 앞으로의 상황을 멋대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래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미 그 방식이 온몸에 익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감에 따라 더 큰 사회를 접하게 되면서 한 가지 말을 듣게 된다.


네가 좀 수동적이라고 생각해.

 맞는 말이다.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나는 많은 종류의 판단과 개척을 남에게 맡겨버린다. 누군가는 답답해할 때도 있었고 누군가는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과연 나의 수용과 수동성이 누군가에게 불리한 건지.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기에 데려다가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게 타인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지. 지적하지 않고 조용히 관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로 단점일지.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을 테다. 사람은 사람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여럿이서 입을 모아 긍정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앞으로의 삶에서도 도태될 가능성이 적은 무언가다. 굳이 그걸 찾아서 인식하고 인정할 필요까진 없지만 “네 그런 점이 좋아” 라는 말과 맞닥뜨렸을 때 그게 기쁠 일이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조금 더 기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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