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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B Nov 09. 2023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란다’



 좋아하는 드라마, <빨간 머리 앤>에서의 대사 중 하나다. 원작에도 나오는 대사인지는 모르겠다. 너무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에 남은 게 거의 없다.


 조세핀 배리는 인생의 반려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앤을 만나 이야기한다.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감정이란 건 때로는 불편하고 참기 힘들지만 이 순간에는 그런 감정도 괜찮은 것 같다고. 이 장면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사랑,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 연인과의 로맨스? 사랑을 그린 온갖 작품들? 가족과 친구? 반려동물?

 한 단어로 정의하고자 하는 때도 많다. 환희, 다정, 헌신, 고결, 아낌, 불안, 고통.

 그 많은 표현 중 ‘슬픔’이라는 건.


 사랑은 언젠가 끝이 난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환경에 의해서든, 시간의 흐름 때문이든.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사랑이 시작되듯 끝나는 방법 또한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사랑한다. 결국에는 다 녹아버릴 촛농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닌 건 사랑하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나 보다. 자기 자신을 연장하여 품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받아들인 것을 떼어놓는 건 손가락이나 팔다리를 자르는 것처럼 괴로울 때가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랑이 끝이 날 무렵 고통을 남긴다.


 그런 사랑이니만큼 이왕이면 영원하길 바라도, 세상에 영원이란 건 없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그러하다. 언젠가 죽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마저도 끝난다. 그 후에는 뒤처진 이들의 슬픔이 남는다.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사랑의 대가로 치러지는 슬픔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 절댓값은 사랑보다 클까, 엇비슷할까, 더 적을까. 종이에 베인 손가락의 아픔이 남의 죽음보다 크게 느껴지는 만큼 사랑에 따른 슬픔도 그럴까. 눈앞에 갓 떨어져 내린 것을 보느라 이제껏 누린 사랑의 빛이 바래버리는 건 아닐까.


 얻은 만큼 잃어보았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고통스러웠다. 때로는 내가 느끼는 모든 게 사라져 버리기를, 그저 없던 것이 되어 더는 나를 찌르지 않기를 바랐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사랑한다. 사랑하고, 잃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잃고, 사랑하고.


 그리고 지금.


 금세 끝나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것들을 나는 자주 돌아보기로 했다. 사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그것 말고는 사랑의 대가를 이겨낼 방법이 없으니까. 나를 깎아 부수며 후회하느니 그게 훨씬 낫다는 걸 너무 어렵게 알아냈으니까.


 슬퍼할 걸 알면서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은 뭘까. 치를 대가가 혹독해도 오늘의 사랑을 한다. 하늘 하나를 볼 때도 즐겁고 싶으니까.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하나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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