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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비 Jun 03. 2024

조선후기 분청사기에서 피카소를 만나다.

나는 공예를 전공하고 상품개발 디자인 업무를 짧지 않은 기간 해오며, 옛 유물에서 디자인의 모티브를 자주 찾았다.

사회 초년생 당시 디자인 모티브를 찾기 위해 박물관의 전시실을 배회하던 중 도자 전공의 학예사 선생님을 만났다. 학예사 선생님은 나를 분청사기 전시실로 이끈 후, 분청사기에 문양의 뛰어난 조형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상품개발에 차용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분청사기 문양의 창의성과 수준 높은 조형성은 정말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설명해 주신 도자기 중 오늘은 조선시대 후기 분청사기 중 물고기 문양의 도자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초기예술은 궁중 예술을 중심으로 고가의 재료와 정제되고, 섬세한 예술이 나타난다. 회화에서는 대표적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산수화, 도자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시기로 청화백자가 등장하였으며, 분청사기 역시 정제된 형태의 정교한 문양으로 등장한다. 이 당시는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조각하고 그 조각에 안료를 채워 넣어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최고의 정성을 들여 제작되었다. 

조선전기의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 무늬 매병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민들의 예술이 주류를 이루며, 민화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해학적 요소들이 나타난다. 도자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대를 풍자하고 과감하며 창의적인 조형성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도자기 표면에 안료를 이용한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전기와 후기의 예술 양식의 차이를 통해 조선시대 5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시대의 변화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병, 조선시대 후기, 동원 274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 분청사기 철화 물고기무늬 병은 주병(목이 좁고 아래쪽이 넓은형태의 병 모양)의 모양에 물고기 두 마리가 연속성을 지니고 움직이는 듯한 형태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주병은 주로 술을 담은 병으로 물과 연계된 물고기 문양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물고기는 마치 움직이고 있듯이 역동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선의 두께의 변화를 주어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 문양에서 주목할 점은, 물고기 몸체의 문양이다. 

물고기 머리의 문양은 비늘 없이 안쪽에 위치한 아가미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으며, 몸체 또한 뼈대의 모양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이는 물고기의 중심이 되는 아가미와 뼈대, 즉 본질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분청사기철화연어문병, 조선시대 후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위의 분청사기철화연어문병은 주병의 모양에 가로 면을 5개로 구분하고, 아래에서 두 번째 면이자 가장 넓은 면에 물고기 한 마리가 크게 배치하고 있다. 이 구분된 비율 또한 설명하자면 길지만.. 오늘은 패스. 

그림이 그려진 면에는 물고기는 한 마리로 크게 그려졌지만, 면을 벗어나는 영역은 잘라내어 생략하고 있다. 또한 주목할 부분은 물고기의 문양이다. 

이 물고기의 머리 역시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아가미를 그려 강조하고 있으며, 몸체의 비닐은 엄청나게 확대하여 그려내었다. 보이지 않는 아가미를 그릴 때는 실제의 크기로 그리고, 보이는 면의 비늘을 표현할 때는 과장되게 그려내면서 시각적 유희를 주고 있다. 

이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통한 즐거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을까?



도자실에서 만난 학예사님은 분청사기에 대한 예술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피카소를 언급하였다. 나 또한 이에 공감되며, 큐비즘의 예술과 더불어 피카소의 작품이 분청사기의 문양과 오버랩되었다. (피카소가 주축이 된 20세기 대표 예술인 큐비즘은 "자연을 원통, 원추, 구체로 다룬다'면서 3차원적 시각을 통해 표면에 입체적으로 재현하는 예술사조이다.)

Pablo Picasso, 1981~1973,


지금으로부터 500년도 전에 나타난 분청사기 어문의 조형성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며 가치에 대한 평가가 재평가되고 있다. 분청사기의 예술성이 다시 평가받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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