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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짱 Nov 09. 2023

1) MBTI T도 할 수 있어. 따뜻한 수의사.

MBTI가 박명수 아저씨랑 같은 나, 수의사 잘할 수 있겠지?

 MBTI, 이제 조금은 고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단어이다. 이미 공중파 방송에서도 아주 많이 다룬 소재이고 관련된 서적, 노래까지 나왔으니, 한국은 이미 MBTI를 거의 소비할 수 있는 만큼 다 소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은 처음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나 대화 소재가 떨어진 자리에서, 공통의 관심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주제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내 MBTI는 ISTP이다. 박명수 아저씨랑 같다. 힘든 게 있어도 먹고살기 위해서 별 수 없이 하고, 어려움이 닥쳐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해 봤자 소용이 없어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슬픔은 전염성이 높아서 타인에게 드러내면 그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꽁꽁 숨기고, 기쁨은 타인에게 드러내면 그가 그도 모를 질투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꽁꽁 숨긴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다시 한번 검사해 본 나의 MBTI,  역시 나는 ISTP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


 돌이켜보면 미혼시절 연애를 할 때는 참 편했던 것 같다. 보통의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섭섭해하는 부분들에서 서운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연락 문제로 서운했던 적도 없고(답장이 안 오면 오히려 편했다.) 분위기 있는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 생긴 적도 없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서운하게 했으면 서운하게 했을 것이다. 남편미안


 그렇다고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그들을 사랑했다. 지금 남편과의 연애시절에는 그의 아파트에 소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소파를 사주기도 했다. (물론 이 소파는 그대로 혼수가 되었다. )


방금 찍은 우리 집 소파, 중간에 껴있는 트레비는 무시 바란다.


 하지만 수의사가 되어서 많은 보호자님들과 진료를 보고 상담을 하는 것은 매우 다른 문제였다.


 특히 심장병 같은 불치의 내과 질환을 가진 보호자님들은 질병 특성상 끝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으실 수밖에 없으시기에, 동물 병원에 오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이신 분들이 많았다.


 병원에 와서 들을 수 있는 말이 더 나빠졌으니 용량을 증량하자, 혹은 현상 유지이니 지금처럼 약을 하루 두 번 계속 먹여라. 이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임상을 막 시작했을 처음에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설명을 드리는데 집중했었다.


 "심장병은 A, B, C, D 단계가 있으며 지금 우리 아이는 X 단계이고 이 단계의 평균 수명은 앞으로 X 년이고 약을 평생 죽을 때까지 먹여야 합니다. 약을 먹는다고 낫는 것은 아닙니다. 약은 생존 기간을 늘리고 아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먹이는 것입니다. 선천적인 소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 질병의 발병에 있어서 보호자님의 책임은 없으세요. 그러니 앞으로 약만 잘 먹여주시면서 X 달에 한 번씩 심장 초음파를 봐서 약 용량을 조절해 봅시다. "

강아지의 심장병 단계, 크게 A, B, C, D의 4단계로 나뉜다.


 음.. 임상을 막 시작했을 당시라 내가 내과 진료를 보고 있던 환자는 3마리였는데, 보호자님이 세 분 다 나와 상담 중 우셨던 걸로 기억한다. 


 심장병에 대해서 설명하는 연습을 했던 지난날이 스쳐지나가며... 충분히 잘 설명드렸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이 설명이 오히려 앞에 앉아계신 보호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속이 상하고 무기력함을 느꼈다. 어떻게든 위로해 드리려고 휴지도 드리고, 음... 울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던 것 정도가 그 당시 내게는 최선이었다.


 (부끄럽지만 이때 나도 같이 울면 보호자님을 어느 정도 위로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울어보려고 눈을 일부러 안 감은 적도 있다. 물론 성공한 적은 지금까지도 한 번도 없다. 라섹으로 힘들게 올린 시력만 떨어졌을 뿐. )


그때 직감했던 것 같다. 아, 나 수의사 하는 거 쉽지 않을 수 있겠다. 내가 이 직업을 평생 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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