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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Oct 31. 2023

마흔셋, 갱년기 말고 사춘기

마음 화산은 폭발할까?

거실에서 1호가 수학공부를 하고 있다.  “집중해서 해야지. 지금 늦은 시간에 하고 있으면 어떡해. (한숨)” 나의 날카롭고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거실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고 순식간에 비비탄으로 변해 1호와 2호에게 사정없이 발사되고 있다. 1호는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눈에 고여있는 이슬을  흘리지 않으려 눈을 계속 깜빡이고 2호는 계속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얼굴 근육이 굳어지고 웃는 게 어색해져 버렸다. 친정일로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듣던 유튜브 강의와 육아서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미안한 마음에 잠든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어 주지만 아이들이 이 손길을 모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많은 걱정거리들로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런 생활이 힘들지만 지금은 친정에 워낙 큰 문제가 백두대간처럼 연결되어 있어 늘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1호가 거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불편했는지 목을 앞뒤로 스트레칭한다. 다음 날 또 스트레칭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앉아 있을 때 서 있을 때 걷거나 뛸 때도 목을 계속 가만두지 않고 앞뒤로 흔들어 재낀다. ‘이게 말로만 듣던 틱이구나.’ 순간 당황했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1호가 “엄마 지금 나 너무 힘들어”라고 보내는 신호 같았고 그 신호를 보내준 1호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었다.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감정은 지하 동굴로 가둬둔 채 모든 스위치를 끄고 이성만 지상으로 올라와 스케치해버리는 버릇은 이 틱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림으로 펼쳐 보여준다. 


1호 학원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도 틱이 있었고 상담을 통해 좋아졌다며 상담 기관을 알려주셨다. 바람같이 그곳에 전화를 해 날짜를 잡고 온 가족이 출동을 했다. 많은 질문에 기억나지도 않는 아이의 어린 시절 생활을 적으라고 한다. 부모의 결혼생활, 양육방식 등 쓰다가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다. 최대한 기록을 많이 해서 1호 상담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머리를 회전시켜 본다. 


주 1회 고정된 시간에 방문 상담이 시작되었고 아픈 게 아닌 이상 상담시간을 꼭 지켰다. 상담기관이 원래 이런 곳인가? 마법을 부렸나 싶을 정도로 이곳에만 오면 그렇게 졸음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입을 벌리며 곤히 자는 것처럼 소파에 앉아 기다리면서 입속을 자동 개방 하며 숙면한다. 상담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까, 드디어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한 달 동안 1호를 상담했는데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1호와 계속 모래놀이를 하는데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모래사장이 휑해요. 너무 쓸쓸하고 춥네요. 아이의 마음이 텅 비어있어요. 어머니 ”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이의 마음이 텅 비어있다, 아이의 마음이 텅 비어있다, 아이의 마음이 텅 비어있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을 만큼 반복 재생된다. 그 밤, 나는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숨죽여 우느라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마음이 텅 비어있는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모르는 길 잃은 마흔셋의 나. 그런 나의 마음도 아이처럼 텅 비어있었다.  


상담 선생님을 대면하는 첫날, 선생님은 1호가 한 달 동안 모래놀이를 하면서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1호의 그림이 너무 마음이 아팠고 상담을 받는 한 달 동안 아무 변화 없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신다. 사진 속에는 드넓은 모래판 한 귀퉁이에 찌그러진 이글루 같은 집 하나가 전부였고 지금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잠시 당황했다. 겨우 목소리를 내며 물어본다.

“선생님 모래 속 그림이 제 마음과 똑같네요. 어떡하죠?”  


1호와 같은 선생님께 부모상담을 받기로 하고 약속된 날짜에 선생님과 함께 마주 앉아있다. 선생님이 나긋한 목소리로 “요즘 어떠세요 어머니”라고 묻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눈물범벅 콧물 주르르 상담실에 있는 티슈 한통을 다 써버릴 기세다. 그렇게 한참 울더니 “하기 싫어요. 정말 하기 싫어요. 안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방언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하며 제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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