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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oh Dec 31. 2023

눈, 동백 그리고 바람

겨울 제주도로 놀러 오세요



여긴 대관령인가? 푸른 밤 제주도는 하룻밤 사이에 설원으로 변신했다. 밤새 내린 폭설로 온통 눈으로 뒤덮인 제주도. 한라산과 해변의 딱 중간에 위치한 중산간길을 엉금엉금 차를 몰고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주도가 아닌 대관령 설원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이 소복이 쌓여 눈나무로 변해 있고, 초록빛 선명한 삼나무 위의 눈은 초록과 하얀색이 대비를 이루며 북유럽의 숲 속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길이 미끄러울까 걱정이 한가득이었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나는 설레임마저 느꼈다.. ‘오뎅끼데스까’라고 외치고 싶기도 한 아침이었다.


느릿느릿 제설차가 지나가고, 도로에는 차들이 거의 없다. 조지윈스턴의 피아노 연주곡 ‘December'를 크게 틀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잠시 잠깐 차에서 내려 그 겨울 숲의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한겨울의 정점에 서 있는 느낌. 갑작스럽게 왔던 그날의 눈이 나에겐 선물과도 같았다.





어제의 숲과 오늘 다시 온 사려니 숲은 완전히 달랐다. 눈의 마법인가?


사려니숲으로 들어서자 눈보라가 가로로 친다. ‘우 웅’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숲의 신비한 기운을 느끼며 서있다. 어제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곳이 우리들 만의 숲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은 눈 속에서 마냥 신이 났다. 하얀 눈잔디에 털썩 드러누워서는 손과 발을 왔다 갔다 하며 천사모양  만들기를 성공했다. 꼬마눈사람과 인증샸도 찍었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꽁꽁 얼어오는 손발 때문에 30분 만에 철수했다. 눈보라가 치는 사려니 숲의 그 길은 몹시도 신비로웠다.

 






어디로 갈까?  따로 정해진 일정은 없었다. 정처 없이 마음이 이끄는 데로 차를 몰아가 본다. 동쪽 성산일출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는 길에  야생의 동백꽃길을 발견했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아래 빨간 동백꽃이 어찌나 아름다왔던지. 차에서 내렸더니 이런 실수로 살얼음 웅덩이 위에다 주차를 한 거다. 철퍽하고 그만 신발이 젖고 말았다. 볼까지 빨갛게 얼었지만 아이들과 동백꽃길을 걸었다. 입장료도 없는 아름다운 공원이라니. 아름다운 풍경을 눈 가득히 담고 출발했다.







차를 10분 남짓 달렸을까 길가에 귤밭들이 주르륵 이어져 있다. ‘귤체험’이라는 플랭카드를 보고 적당한 곳에 차를 멈추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주신 바구니를 안고 귤밭으로 총총 들어가 본다. 초록 싱그러운 잎새 아래 선명한 주황생 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똑 똑 하나씩 바구니에 귤을 담느라 아이들은 너무나 신이 났다. 역시 체험을 좋아하는 초등들이다. 갓 딴 귤은 역시 새콤달콤 향기도 그만이다.






저 멀리 웅장한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용암이 흘러 흘러 동쪽 바다 끝에서 솟아 나와 만들어졌다는 성산 일출봉. 그의 생성 과정을 생각해 보면 남다르게 느껴진다. 해안가로 내려오니 눈바람은 잦아들고 찬란한 햇빛 가득하니 다른 곳에 온 것 만 같다. 눈발이 조금은 날리지만 일출봉 등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 녀석들이 과연 잘 올라갈 수 있을까? 우려했던 나의 생각은 완전한 기우였다. 나를 버려두고 아이들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헥헥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게 힘들기만 한데 아이들은 마치 솜털처럼 날아서 정상으로 먼저 가버린 거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에 바람까지 들쑥날쑥 불어와서 난간을 붙들고 벌벌 떨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휘잉 사람을 살짝 휘청이게 하는 바람과 함께 정상에 도착했다. 탁 트인 바다와  분화구.  뒤편으로는 우도 그리고 성산의 마을, 오름들까지 제주 동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20분 만에 이 높디높은 일출봉에 오른 것이 너무나 뿌듯했나 보다. 다음에 또 오리라 다짐하면서 성산과 작별을 고했다.



성산일출봉에서-동백꽃 귀여운 머리띠





숙소인 함덕으로 가기 위해 동쪽 해안길을 따라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성산일출봉아 안녕! 내년에 또 올게! “ 친구처럼 인사를 하고 출발했다. 5분도 안되어 잠이 들어버린 두 녀석. 재잘거림이 사라진 차 안. 나 홀로 여행온 느낌이다. 구름 사이로 바치 햇빛 한줄기가 바다 위로 떨어졌다. 레이저 빔처럼. 그 빛이 맞닿은 바라는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차를 길가로 새웠다. 어라. 차 문이 열리지가 않는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었던지 바람과 나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여엉차 겨우 문을 열고 바다를 향해 섰다. 너무 추워 5분을 서있기 어려웠지만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그 겨울, 그날의  바다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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