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Taneli Lahtinen
그래 맞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그 말은 딱 맞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의 힘이 이토록 엄청난 것이었는지 실감하는 중이다. 들려오는 소식들에 하나씩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분명 그때만 해도 나랑 비슷했는데, 나도 그리 나쁘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집에서 온전히 머물던 시간 동안, 그녀들은 저 멀리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그 세계의 이름은 '성공'이다. 나만 빼놓고 가버렸다. 억대 연봉을 거머쥔 팀장, 임원이 된 친구들의 삶은 눈에 띄게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녀들이 빼놓고 간 나라는 여자는 뭐 하나라도 할 때마다 할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는 소심한 아주머니가 되어 있었다. 겨우 돈 몇 푼 때문에 말이다.
‘이제 너무 늦었어! 이 나이에 회사를 들어가겠어? 아님 다른 일을 시작하겠어? 그냥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 드려’라는 이성적인 목소리와 ‘무슨 소리! 아직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잖아.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두 마음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맴돈 지 오래다.
‘롤모델을 한번 찾아보자! 나처럼 전업으로 지냈지만 성공한 친구들이 있다면 그들처럼 한번 살아보는 거야’ 책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사례를 볼 땐 나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나와 비슷한 조건인 그녀가 해냈다면 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레이더를 돌리기 시작했다. 과연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좋을까? 친구 몇몇의 이름이 떠오른다. 얘기나누는 중에 살짝 살짝 느껴졌던 고수의 느낌이 심상치 않았던 이들. 갑작스레 연락을 해서 놀라겠지만 안부를 빙자한 인터뷰를 감행해 보는 거지 뭐. 이래 봬도 왕년에 질문의 여왕이었으니 한번 그들 안에 있는 비법을 내가 다 캐내어 보리라.
“따르르르릉”
“예희야 안녕? 완전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지? 네 안부도 궁금하고, 실은 널 좀 인터뷰하려고 연락했다 하하하” “예전부터 넌 경제에 관심이 많았잖아. 남편이랑 맞벌이하면서 현금이 많이 쌓이는데 어떻게 투자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비법이 있으면 좀 풀어봐”
“혹시 써니한테 무슨 얘기 들었어? 최근에 나한테 좀 좋은 일이 있긴 했는데 그 얘기 듣고 연락한 거 진짜 아니야?”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도대체 그 ‘좋은 일‘이란건 뭘까? 궁금함이 밀려왔지만 차분하게 친구가 말하길 기다려본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시작된 이야기는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까지 계속되었다. 내 최애 드라마인 ‘연인‘ 본방 시청을 놓친 줄도 모르고 설레는 맘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스토리는 나에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쌍둥이 여자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는 프리랜서로 집에서 각종 책, 매거진, 광고지를 디자인하는 일을 한다. 매달 수익이 일정치 않고 꽤나 늦은 나이게 아이 둘을 가졌기에 경제적인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이 문제와 씨름하면서 그녀 나름의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씨감자(좋은 품종의 감자를 반으로 잘라 만듦)를 심으면 추수 때 줄기에서 줄줄이 알감자가 나오듯 그 ‘무언가’가 여러 결실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거다.
그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린이집 다니는 꼬맹이가 잠든 새벽에 그녀는 무얼 한 걸까? 밤잠이 많은 나에겐 그녀의 불면증이 살짝 부럽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친구는 유튜브 관련 강의도 듣고 스마트 스토어에 본인이 그린 캘리 작품도 판매해 보았다고 했다. 관련된 책과 영상을 보며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직접 따라 해 보고, 새로운 걸 익히면 시도해 보는 지루할 수도 있는 그 과정을 3년 가까이하던 올해에 그녀가 말했던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녀의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유튜브 traffic’,‘유튜브 홈화면 노출의 힘’ ‘주언규 pd’ ,‘mkyu’, ‘클래스 101’,‘드류앤드류’,‘인프루언서’ 등의 용어나 배경을 나도 관련된 책을 읽고 유튜브를 시청했기에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달랐던 점은 내가 mkyu를 알고만 있었을 때 그녀는 mkyu 대학생이 되었고, 유튜브 만드는 영상을 듣고만 있었을 때 그녀는 실제 채널을 만들어 보았다는 것. 나는 알고만 있었고 그녀는 앎에 실행을 더했다는 거였다.
많은 실패 뒤 n번째로 만든 유튜브 채널이 마침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 성공. 어떤 컨텐츠의 채널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곳엔 70이 넘으신 친정어머니가 그리시는 그림에 잔잔한 음악을 덧붙여서 만든 영상들이 무려 60개나 넘게 올라가 있었다. 이번달 수익만 수백 만원. 그 돈이 어머니의 연금이 될 거라는 수줍은 친구의 말에 마음이 찡 하고 울려왔다.
‘역시 어머니가 그 시절 미대를 나오신 고급 인재신가 봐! 재능이 있어야 뭐든 성공할 거리가 있는 거지’ 하고 실망하려는 나에게 친구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엄마가 작년에 그림 배우고 싶어하셔서 동네 복지관에서 배우셨거든. 초보 화가 셔' 화려하진 않지만 작고 소박한 그림을 그리시는 주름 잡힌 손을 바라본다. 알록달록 색도 없는 연필로만 그리는 그 시간 속에 함께 있는 음악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