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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oh Nov 17. 2023

월든 호숫가에서 한가로운 오작가의 하루

나의 눈부신 5년 후를 상상하며


새하얀 새틴 커튼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듯 들어온다. ‘벌써 아침인가?’ 풀잎냄새 섞인 공기의 내음이 깊은 평안함을 준다.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데이비드 소로가 머물렀던 월든의 그 호숫가에서 머문지 벌써 한 달. 그가 보았던 풍경을 함께 보고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본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라는 그의 글귀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이곳으로 이끌었다. 내 삶을 한번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행운을 얻다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살았다. 올해 초 4번째로 발간한 에세이 [푸르던 나날]이 베스트셀러 에세이 부문에 1위로 링크되면서  마침내 유명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거다. 앞서 가는 든든한 2기 동기분들의 눈부신 발자취를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베스트셀러의 작가의 삶이 이렇게 다이나믹한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작가 사인회, 강연회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일정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내가 애청하던 세바시에도 출연 약속이 잡혀 있었다. 첫 공중파 촬영인데 벌써부터 설렘반 떨림반이다. 자랑스러워할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니 하루에도 여러 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5년 전 운명처럼 만난 브런치 프로젝트 수업으로 글쓰기 세상으로의  문을 열게 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5년은 얼마나 꿈같은 나날이었는지. 이은경 선생님을 만난 건 뭐라할까? 마치 가요의 가사처럼 내겐 운명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붙잡고 잘난 친구들과 비교하며 세상 우울해 하던 아줌마는 어디로 간 거지?  연예인은 아니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서 화장 안 한 얼굴로 편히 못 다니게 된 웃픈 현실 빼고는 너무나 설레는 삶이다. 매일 직장에 출근하지 않아도 나의 책이 내가 자는 시간에도 돈을 벌어주는 이 시스템이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주인이 된것 같이 황홀하다.


 아침은 이웃에 사는 레이첼이 어제 가져다준 감자와 옥수수를 간단하게 먹어야지. 정많고 다정한 그녀는 내가 온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고요하지만 충만한 이곳 생활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꿈꾸었던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다니. 별다른 양념도 없이 소금만 톡톡 찍어 오래도록 씹어 본다. 구수하고 짭조름한 감자가 속을 편안하게 한다. 홀로 있어 살짝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소로의 책을 읽고 있으니 그와 함께 얘기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머물고 있는 작은 오두막은 오크 나무로 지어진 집이라 향긋한 나무 냄새가 진동한다.  창밖으론 눈부신 노란색의 데이지 꽃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포르르르 토끼 두 마리가 지나간다. ‘엄마와 아기 토끼인가?’ 어릴 적 시골에서 우리에서 키웠던 토끼가 아니라 들판에서 자유로이 노는 녀석들을 보니 피터래빗의 작가의 소설이 이런 영감을 받아 탄생했구나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나도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산책 때 종종 만나던 귀여운 아기 사슴들, 호수를 부지런이 오가는 오리들 그리고 사랑스런 다람쥐 가족까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엄마 엄마 나 어떻게 해? 이번 뉴욕시에서 개최했던 에세이 공모전에서 1등 했어 it's unbelievable’ 너무나 좋았는지 영어와 한글이 마구 섞여서 말이 나온다. 나보다 훨씬 먼저 작가가 꿈이라 조잘조절 거렸던 5년 전 꼬맹이 둘째. 그랬던 녀석이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오빠와 함께 보스턴에 머물며 공부하고 있는 녀석은 너무 기뻐서 하늘 위로 날아가버린 것만 같은 목소리다.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녀석. 내가 첫 책을 냈을 때만큼 설레고 기쁘다. 온 가족이 자기의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니.  


아들은 메디컬 스쿨을 입학을 위해 눈코 틀새 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섭섭하지만 연락한 통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건 알지만 녀석이 보고 싶구나. 남편은 나 대신 아이들을 돌보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아이들 밥 해주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투덜 되지만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번 여행을 마치면 일정에 맡게 남편도 한국으로 들어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은 지난 3년간 최고의 조력자였던 제니퍼가 잘 맡아주기로 했기에 걱정이 없다.


‘삐거덕’ 나무문을 열고 산책을 나왔다. 딸아이의 전화로 평소보다 30분이나 늦어졌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을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한 달 사이에 많이 꽤나 추워진 날씨 탓인지 호수에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후욱’ 깊이 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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