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영화)에 나타난 사랑의 변증법적 승화-불법과 합법 사이-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기도수'의 부인인 ‘서래’와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인 ‘해준’이라는 두 인물 사이에 피어난 관심이 애정으로 발전하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합법과 불법이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장치다. 합법의 세계에 있는 사람은 형사 ‘해준’이고, 불법의 세계에 있는 사람은 죽은 남자의 아내 ‘서래’다. 언제든지 불법 체류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서래’는 죄질이 매우 나쁜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를 통할 때만 합법의 세계와 마주할 수 있다. 한편, 합법의 세계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해준’은 살인과 같은 범죄 사건을 통할 때 비로소 불법의 세계와 마주한다.
‘해준’에게는 합법과 불법이 양립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서래’는 그것이 반드시 양립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지독한 아이러니지만 그것이 바로 두 사람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이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비극임과 동시에 희망이 된다. 살인이라는 범죄가 바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준법정신, 예의와 친절이 몸에 밴 모범적인 생활, 불의와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사람인 ‘해준’과 불법, 범죄, 이중성 등으로 나름대로 탄탄하게 무장한 ‘서래’가 살인이라는 사건을 통해 만나면서 관심과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맞으면서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합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겉과 속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감정선이 오묘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되면서 관객에게 최고의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 형사와 용의자라는 이상야릇한 관계를 끝내고 다시 합법과 불법의 세계로 나누어진 ‘해준’과 ‘서래’였지만 이미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어졌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는 운명을 맞이한다. ‘해준’은 부인이 근무하는 지역으로 전근 가서 오순도순 잘살아보고자 했지만, 범죄와 살인 곁에 있어야 행복하지 않냐는 뼈있는 한 마디에 좌절한다. 한편, 새로운 사람과 결혼해서 평탄한 삶을 살 줄 알았던 ‘서래’는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해 두었던 ‘해준’과의 대화 내용을 남편에게 들켜 협박과 폭력을 당하면서 또다시 살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서래’는 교묘한 방법을 써서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다. 이 사건을 다시 ‘해준’이 맡으면서 두 사람은 헤어지려야 헤어질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한다. 형사와 살인 용의자의 사랑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해준’을 만난 ‘서래’는 자신이 ‘해준’의 미제 사건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해결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모든 정보를 벽에 붙여두고 매일 쳐다보면서 그것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사람임과 동시에 합법적인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인정하지 못하는 타고난 형사가 바로 ‘해준’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법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해준’과의 사랑이 한 단계 도약하면서 승화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서래’는 죽음이라는 이별과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준비한다. 합법과 불법이라는 두 개의 세계로 분열되어 대립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에서는 ‘헤어질 결심’을 실천함과 동시에 미제 사건을 통해 ‘해준’의 마음에 영원히 남도록 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래’는 ‘해준’에게,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라고 하면서 바다에서 건진 자신의 핸드폰을 더 깊은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해준’과 함께 외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호미산’을 찾아 유골을 뿌림으로써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서래’는 안개 자욱한 해변으로 가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구덩이를 파고 자신을 그속에 숨긴다. ‘해준’이 오는 사이에 바닷물이 그녀가 들어가 있는 구덩이를 덮쳐 물과 모래로 묻어 버리면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 위를 걸어 다니면서 애타게 ‘서래’를 찾아보지만 거친 파도 소리만 귓전에 메아리칠 뿐 도저히 그녀를 찾을 수 없다.
‘서래’는 바닷물 아래 모래 구덩이에 묻혀 도저히 찾을 수 없도록 만든 육체적 죽음을 통해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합법의 세계에 머물면서 그것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사명으로 하는 ‘해준’의 마음에 영원한 사랑으로 남는 방법은 그의 불면증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는 未濟事件의 주인공이 됨으로써 ‘해준’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승화시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불법(佛法)의 세계를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의상대사(義湘大師)를 사랑한 중국 여인 선묘(善妙)가 바다에 몸을 던져 속세의 삶을 마감한 후 용으로 화해서 부석사(浮石寺)의 무량수전 아래에 묻혀서 승화된 사랑이 천년을 훨씬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은 선묘 설화와 ‘헤어질 결심’의 구성과 진행방식, 장치 등이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글쓴이만의 느낌일지 모르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념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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