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18번이 있는가? 그렇다면 쉽게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의 18번은 현재 당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8번이라면 보통은 노래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개개인에 따라 그림, 건축, 장소등 다양하다.
나에게 18번을 묻는다면 나는 그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의 모퉁이에는 시대마다 대표하는 그림이 있다. 인생의 한때 나는 쇠라의 퐁트벨 숲 속에서 오랫동안 헤맸다. 그리고는 잠시 고흐의 아몬드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지금은 레쎄르 우리의 포츠담 광장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쇠라의 퐁트벨의 숲속
처음 퐁트벨의 숲속 이라는 그림을 보았을 때 그 강렬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겨울 산이구나.’ 나는 서서히 그 그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림 속 세상은 암흑천지였고, 나는 천지사방 구분하지 못하고 헤매고만 다녔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숲 안에서 영원히 미아가 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익숙해지면 어둠 속에서도 형체가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도 캄캄한 그 너머 어디선가는 토끼가 뛰어 바스락거리고, 숲 한가운데 몰래 숨어있는 샘가에 여우가 목을 축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끝이 어딘지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숲을 관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숲은 숨 쉬고 있었고, 희미하지만 빛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언제 그 숲을 빠져나왔는지 그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느새 나는 아몬드 나무에 막 피어나는 작디작은 꽃송이들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알게 되었고, 포츠담 광장의 밤을 만나 촉촉이 비 내리는 여름밤의 여유로운 한순간에 숨을 깊이 들이쉬고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려 한다.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거나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누구에게 ‘ 나는 인생에 그림이 있어. ’ 라는 말을 함부로 하고 다니지는 못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나름의 안목이 있다고 자부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착각. 진짜를 알아본다는 긍지에 힘입어 남과는 다른 면이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달콤한 자긍심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여지없이 산산조각 박살나는 순간이 찾아 오고야 만 것이다. 2020년 3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이스라엘 박물관 소장품전에서 레세르 우리의 포츠담 광장의 밤을 보고 돌아온 그날 밤의 일이다.
레쎄르 우리의 포츠담 광장의 밤
그 전시는 인상파와 후기인상파의 그림으로 이루어졌지만, 화가들의 대표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음에 와닿는 그러니까 한칼을 가진 그림을 찾을 수 없었다. 별거 아닌데? 여기까지 괜히 왔나? 불만족스러움으로 마음은 툴툴대고 있었다. 그러다 포츠담 광장의 밤이라는 그림 앞에 시선이 멈춘 것이다.
순간 깨달았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여기 온 것이구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잔잔한 여름밤의 풍경이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우산을 쓰고 광장을 가로질러 집을 향해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고양된 감흥을 홀로 가지고 있기는 너무 안타까웠다. 처음 보는 듣보잡 화가에 듣보잡 그림이라는 것도 좋았다. 누군가와 이 그림과 내 감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자랑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토록 외우고 또 외웠는데... 그렇다면 다음은 당연하게 검색이었다. 인터넷 어딘가는 있겠지... 그렇개 나는 나에게 내밀어진 진실의 빨간 약을 일고의 고민없이 꿀꺽 삼켜 버렸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막바지에 다달한 전시회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그들이 친절하게도 많은 글을 먼저 올려놓고 있었다. 그림까지 첨부하여 친절하개 씌여진 그 글에는 내가 찾은 화가의 이름이 레쎄르이며, 그들 또한 이 전시회의 넘버원으로 그 그림을 꼽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너도, 나도, 그도, 그녀도, 모두 똑같이 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내 껀줄 알았는데... 나만 본 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다 함께 느끼고 공감했던 멋진 그림이었다. 모피어스가 내민 빨간 약을 먹기 전에 나는 내가 네오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약을 먹고 깨어난 나는 그저 매트릭스안에서 서성대는 이름없는 관람자 1 에 불과했다.
쓴 커피를 마시며 더 쓰린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서 명화이고... 그래서 예술인 거야. 그러니까 박물관에 걸려있다 비행기를 타고 지구의 반을 건너 여기까지 전시회를 왔겠지.” 그리고 뼈아프게 인정해야 했다. 특별한 건 내가 아니라 그 그림들이었다. 국적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세대가 달라도, 모두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그림들이 남다르게 뛰어난 것이었다. 분명 나는 아니었다.
보통의, 평범한, 무엇하나 다를 것 없는 나에 대한 자각은 슬픈 일일까? 일면은 그렇다. 슬픔이나 실망과는 결이 다르게 ‘그럼 그렇지.’ 피식 허파에 가득 찼던 바람 빠지는 가벼운 낙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특별함에서 놓여나자 훨씬 많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전에는 전시회에 가면 신경을 곤두서고 눈에 힘을 주었다. 감흥을 느껴야하고, 특별한 것을 찾고, 진짜를 감별해 내기 위해 촉각을 세워 포착해 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고 잔뜩 긴장해서 뭐라도 건졌다 싶으면 흐뭇해했다. 누구와 나누지 못하더라도 자부심과 자만심에 뿌듯했다. 분명 시작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허세와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와 나누지 못하더라도’일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누군가와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아마도 오래전에 깨달았을 것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타인이 나에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나의 감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내 미술감상은 더 건강해졌을 것이고, 더 풍부해졌을 것이다.
존경하는 어른 중 한 분이 나에게 ‘사람은 사람 옆에 있어야 사람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늘 혼자 외통수,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나에게 꼭 해주고 싶으셨던 말이셨을 것이다.
비록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포스팅을 올려준 낯모르는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내가 경도되어 있던 그림에 대해 말을 걸어준 사람들이고, 주제파악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일깨워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서 서로 공감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별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지금도 포츠담 광장의 밤을 살아가고 있다. 내 방에 걸린 작은 복제품을 보면서 생각한다. 언제쯤 집에 돌아오게 될까? 나는 아직 버스를 타지도 못했는데...
그렇다고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아니냐고, 이제는 지친다고 하소연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안다. 분명히 돌아오고 있다. 그 숲에서 길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곧 나도 분명히 도착하게 될 것이다. 집, 나의 집으로...